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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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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태 Series 14 반석 위에 세운 집 / 마태복음 7:24~29

 

동경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입니다. 모든 건물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빌딩 하나만 아무 손해가 없이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그 빌딩은 라이트 씨라고 하는 미국인이 건축한 빌딩이었는데 그는 언젠가는 동경에 대지진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것에 대비해서 아주 튼튼한 기초를 놓아서 건축한 빌딩이었습니다. 처음 빌딩을 지을 때 그 건축 과정을 보고 많은 사람이 비난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불필요한 경비를 그렇게 많이 들여서 필요 이상의 기초 공사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대지진으로 인해 이 건축가는 큰 명성이 쌓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건축 지식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런 방면에 피해가 하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상당한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날림 공사’라고 하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별히 지나간 1990년대에 대한민국 전체가 불안했습니다. 사방에서 뭐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다리도 무너지고 백화점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졌습니다. 어느 건축가가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아파트 공사한 것도 더 무너질 건물들이 많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대비해야 된다고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오래된 아파트는 재개발법으로 헐고 다시 짓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골드코스트에서 15년 정도 살았는데 지형적 상징이 해변입니다. 끝이 없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자연히 바닷가에서 여러 가지 축제가 많이 열립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얼마 전까지 써퍼스파라다이스에서 모래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대회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짐승의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성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꽃을 만들기도 하고 물고기를 만들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형상으로 모래성을 쌓아서 끝없이 만들어놓는데 너무너무 아름답고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여러 번 가봤는데 어떻게 모래를 갖고 그렇게 똑같이 만들어놓는지 예술적으로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인가 이 축제 기간 내내 비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예술 작품들이 빗물에 무너지는데 그것을 막으려고 천으로 덮어씌우기도 하고 비닐로 빗물을 막아 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해서 그 모습이 처참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잘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소나기 한 번에, 파도 한 번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고 맙니다. 바로 모래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그 재료가 돌이었다면 파도가 백번이 아니라 천 번이 몰아쳐도 그 형태를 그대로 보존할 텐데, 모래로 쌓았기 때문에 모두가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기초는 아주 중요합니다. 건물이나 길, 하다 못해 나무를 심는 것도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또한 지식이나 학문도 마찬가지라서 기초가 튼튼하면 그 결과가 많은 차이가 나죠.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는 반석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반석이라함은 기반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 삶의 기반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입니다. 너의 삶의 기반이 튼튼하냐, 아니면 부실하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 성경 가운데 나타나는 다윗왕의 반석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가 저술한 시편에서 많이 나타나 있는데

 

18편 2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9편 14절을 보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31편 3절을 보면 “주는 나는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42편 9절을 보면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144편 1절을 보면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글에서 자신의 반석, 즉 기반은 하나님이라며 자신의 모든 기초와 근본은 하나님이시므로 자신의 삶은 언제나 든든한 반석 위에 서 있다고 소개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산상보훈의 복음을 총정리하는 결론 부분으로 큰 의미가 부여됩니다. 이 결론은 성도들의 삶의 기초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도 죽어도 예수님의 기반 위에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일들에 대해 개인의 감정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려고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죽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히려 기대와 소망으로 미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반석이란 의미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유혹받지 않기 위한 반석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너희를 미혹케 하리라.” 이것이 현실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종교적 혼란을 가져왔는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생각하지 말고 우리 대한민국만 보아도 이 문제가 교회의 발전과 개인의 신앙문제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끼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문제는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번져 대중들로부터 반 기독교 정서를 불러 일으키게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2. 신앙생활은 본질적 가치를 위해 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를 믿고 살아갑니다. 이 과정을 신앙생활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앙생활을 예수를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비가 오고 창수가 날 때 다 무너지고 맙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문학적 표현의 질문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고 갔느냐? 그런 사람을 보려면 다른 데로 가야 한다. 그런 사람은 왕궁에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해봅시다.

 

“너희가 무엇을 얻으려고 교회에 왔느냐?” 이것입니다.

 

이민교회의 딜레마 가운데 하나도 이런 문제에 직면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가치를 논하라면 라면 당연히 말씀의 선포, 중보의 기도, 국내 복음의 전파와 불신자 전도, 병든 자를 돌봄, 고아와 과부들을 구제, 국제적으로 미전도 지역 국가에 선교나 가난한 나라 주민들의 기아와 질병에서의 구제, 마지막으로 성도 간의 신실한 교제 등입니다.

 

한국의 한 목사님이 미국으로 이민가서 목회를 하다 보니까 잘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은 스트레스가 많고 금방 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괜찮게 나가던 사람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할 일은 많지 않지, 괜히 쓸모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것 같지,이래저래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습니까? 그래서 이 목사님이 ‘어떻게 하면 이민자들을 위한 훌륭한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연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니까 이민을 와서 사는 게 참 재미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교회를 하자.’ 이것을 목회 철학으로 정했습니다.

 

얼마나 아이디어가 좋습니까? 그래서 교인들은 와서 재미있다고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주일마다, 계절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인은 점점 안 나오는 겁니다. 나오던 교인들조차도 안 나오는 겁니다. 목사님은 생각합니다. ‘이상하다! 재미있어서 많이 나올 것 같은….’ 어떤 때는 교회에서 회의를 하는데도 목사님은 재미에다 철학을 맞췄기 때문에 “교회 회의도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시도록 하자!” 하고는 진짜로 재미있게 하느라고 맥주를 박스로 갖다 놓고 회의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교인이 다 없어지고 8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그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서 주일 예배 간단히 보고 8명 데리고 할 것이 없어 매주 사택에 데려가서 “내기 윷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교회는 그것으로 끝이 났던 것입니다.

 

비가 오거나 창수가 날 때 교회의 대응이 본질적 가치에서 벗어나면 그런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가르쳐야 할 본질은 어려울수록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이기도록 해 주어야지 재미로 그것을 이기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입니다. 찬송은 가요보다 재미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소설보다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려운 개인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 교회의 힘이요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면서도 자신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 어느 재벌이 비자금 형성하고 자식이 운영하는 자회사에 일감 몰아주고 주식 불법거래하며 큰 죄를 지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선 그 재벌 총수가 하는 말이 “올해는 제가 관재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툭하면 법원엘 오네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죄는 자신이 짓고 왜 운명을 탓하는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는 자신이 짓고 하나님 탓하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늘 묻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삶의 본질이 삶의 기초가 잘 못 놓여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남 탓만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보습을 망각한 체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위로와 재미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먼저 어렵고 힘든 십자가를 지고 가는 믿음의 정열이 전해지고 선포될 때, 거룩한 목표를 향해 신실한 성도들이 뜨거운 마음을 열고 묵묵히 걸어오는 것입니다. 개인의 철학이나 목적이 목회의 방향이 된다면 교회의 본질적 가치는 개인의 취향에 의해 저격당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무슨 재미를 느끼려 하는 것입니까? 주께서 나를 위해서 저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나도 주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내가 줄 수 있는 십자가를 지겠다는 마음의 각오로 힘들지만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 하나님의 심판 역사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도취 되었을 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로 무너졌습니다. 인간의 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힘의 건축을 했을 때 하나님은 인간 힘의 상징인 바벨탑을 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향락의 문화를 꽃피었을 때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치셨습니다. 이 세상도 똑같습니다.

 

누가 로마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누가 징기스칸이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알렉산더가 멸망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다 무너졌습니다. 막강할 것 같았던 그들의 힘과 권력은 모레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3. 철학과 사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20세기의 역사 중에 세계를 양분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칼 막스의 철학을 여러 나라가 복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다. 계급을 없애고 평등하게 살며 먹고 사는 것을 똑같이 누리며 살게 하자.” 얼마나 훌륭한 구호입니까? 그래서 막상 이 막스의 철학을 실천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회가 걸리적거리는 것입니다. 막스의 사상과 예수의 말씀과 어디인지 비슷하면서도 사실상 정반대의 개념을 지녀, 막스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실현코자 하나님의 교회를 내쫓고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서 건설한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진짜 칼 막스가 말한 대로 많은 이들은 평등하고 공평하게 가난하고 못살고 있습니다. 계급층은 부유하지만 서민층은 점점 어려워져 사람을 잡아먹고 살아야 할 만큼 처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막스는 “먹고 사는 문제를 평등하게 만들자. 이것이 유토피아다.”라고 부르짖었고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칼 막스의 철학을 따라간 사회주의 국가는 다 망했습니다.

 

우리와 가까운 북한을 생각해 보세요. 남한은 현재 5만 개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데 북한은 두 개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보이는 교회이고 지하교회는 더 많이 있지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교회는 다 내쫓았습니다. 일부러 내쫓은 겁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훌륭하게 해결한다고 말했던 사회주의 국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북한에는 지상낙원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에는 체제상 김일성 일가가 부모이기 때문에 고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교회도 매년 북한의 5개 고아원에 200 컬례의 눈장화를 공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전에 제가 유엔과 북한 장애인연맹으로부터 북한의 장애인 부모들에게 교육을 시켜 달라는 공식 초청도 있었습니다. 이 말은 거의 대부분이 사실과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며 이들의 선전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라는 겁니다. 북한의 GNP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지금 2만 달러를 넘어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북한의 GNP는 천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20분의 1도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러고도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다 주신다는 겁니다. 대신 조건이 붙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석은 앞의 말보다는 뒤의 말, 준다는 말보다는 하라는 말에 기초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초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삼은 나라는 다 잘삽니다. 그 예가 덴마크입니다. 다 훌륭합니다. 처음에는 부실했지만 결국 예수라는 만세 반석 위에다 국가와 백성들의 삶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결국 덴마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모든 백성이 잘사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라.”라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날 때 무너짐이 심할 것이다. 무너지지 아니하는 것은 기초를 반석 위에 놓는 곳이니라.” 그 기초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입니다.

 

국가도 개인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하면 영원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오늘 약속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맘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세웁시다. 우리의 삶의 기반을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삶으로 깔아 놓읍시다. 우리의 미래의 소망을 사람들이 계획하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잘사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시기로 약속하신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합시다.

 

무너지지 아니하는 집을 건축하는 지혜로운 삶의 소유가,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믿음과 의지가 오늘 교회 나오신 여러분에게 축복으로 임해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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