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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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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태 Series 13 영향을 주는 삶

마태복음 7:15-19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올 무렵 대한민국의 처지는 그야말로 비참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에 허덕였고 입을 것이 없어서 가마니를 두르고 다녔으며 온통 전염병에 노출된 백성들은 하루가 멀게 죽어 나갔습니다. 특히 심신이 취약한 어린아이들은 다양한 일로 인하여 생후 백일을 넘기지 못했으며 성인 평균수명이 45세라 대한민국의 대부분이 사람이 살래야 살 수 없는 사지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사람 측에도 못 들어 아이를 위한 그 어떠한 복지 정책도 없었으며 교육과 건강과 인성교육에는 정부도 종교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불교와 유교조차 그렇게 무관심했던 어린이 교육들을 위하여 유치원이다 어린이 학당이다하여 어린이 교육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어린이 교육에 박차를 가했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조정이라 불리었던 정부는 부패와 당리당략에 물들어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는커녕 그 불쌍한 백성들을 뜯어먹기에 혈안 되었었고 민족 역사와 함께 해왔던 불교는 이들의 삶을 외면한채 조정 고관대작들에 끈을 대어 먹고 살기 위한 아첨과 아부로 일관했으며 조선의 대국 혹은 모국이라 불리었던 중국으로부터 유교가 들어왔으나 이는 더 악랄하고 비참하게 나약한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백성들을 위한 것은 없었기에 백성들은 누구의 돌봄도 없이 그야말로 잡초처럼 스스로 살아야 했지만 그것이 어찌 쉬웠겠습니까?

 

身體髮膚(신체발부 수지부모) 受之父母니 不敢毁傷(불감훼상)이 孝之始也(효지시야)다. 라고 해서 부모에게 받은 것은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선 안 된다 하여 몸을 훼손하면 안 되니 외과 수술은 상상도 못하는 불효라고 가르쳤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 하여 남녀가 다르고 부부가 다른데 어찌 여인이 다른 남성의 일에 왈가불가하며, 여성이 여성의 인권을 부르짖을 때마다 칠거지악이라는 당시의 민법(?)을 통해 여성을 붙들어 묶어 놓았습니다.

 

이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함은 다른 말로 칠출이라고도 하는데 이 일곱 가지에 포함되면 용서 못 하는 죄로써 출가(내어 쫓음)시켜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두 번째, 시부모님을 제대로 잘 섬기지 못하는 것

세 번째, 질투하는 것

네 번째, 부정행위를 하는 것,

다섯 번째, 간질이나 나병 등의 유전병이 있는 것

여섯 번째, 말이 많은 것

일곱 번째, 훔치는 행위

 

등으로 대부분 웃지 못할 남성의 일방적인 성차별과 폭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일곱 번째 훔치는 행위도 남의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집안의 것으로 특히 남편의 것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유교 측에서도 이 천하에 무식한 이런 도들이 말도 안 되는 코미디라는 것을 인지하고 부부유별을 다른 부부와 엄격히 구분을 시키기 위함이라고 본래의 의도를 바꾸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뭐 잘 된 것이죠. 이제라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 된 교육을 하는 것은 잘 된 것입니다. 이것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듯 존재한다면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좋은 선지자들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 선지자들이야말로 당대의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주는 큰 주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의 선지자들을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그 열매가 증거한다고 하시며 당시의 선지자들의 품행과 행태가 어떠 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거짓선지자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는 자들도 우매하고 미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잘못하면 이 거짓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거짓 선지자인지 말씀을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으로 선지자가 된 거짓 선지자와 처음에는 진실한 선지자가 되기로 하였지만 나중에 변질된 선지자입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목적으로 선지자가 된 거짓 선지자들은 본질을 벗어나 비본질적인 것을 가르치고 강요하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납니다. 이런 자들은 일단 정통교회의 틀 안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여겨봐야 합니다. 보통 이단들이 그렇고,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초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곧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즉시 배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변질된 선지자들은 참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은 정통교회의 울타리에 있고, 정통교회의 보호를 받으며 거짓 선지자 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또 하나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오염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적그리스도 짓을 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5가지로 추려 보겠습니다. 잘 듣고 파악하여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주장하는 말이 성경적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보통 이단의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예수의 구원을 믿으며,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가? 사도신경을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이단이며, 거짓 선지자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 외에 추가되는 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산이나 돈이라든지, 성이라든지, 특히 특정 성도들을 자기 수하에 두고 몸 종처럼 부리는 일을 하려 한다면 이는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일반 성도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또 어떻게 유혹하면 되는지 노하우가 상당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이단인 줄 알면서도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둘째, 선지자 노릇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선지자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이들의 목적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혹 내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행동이나 말이나 사역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그 목적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욕 차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고,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존경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고 있는가?

 

참 선지자는 성령으로 늘 훈련받고 성령충만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때문에 성령을 통해 그 인격이 변화되며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갑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마귀의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무시하고, 인격을 파괴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합니다. 거짓을 일삼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며, 표리부동한 그런 삶의 행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넷째, 교회의 덕을 세우는가?

 

당연히 참 선지자는 교회를 부흥 성장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를 자신의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외적으로 부흥 성장하게 되면 이를 자신의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섯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참 선지자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그런 사명에 대해 둔감하고, 외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자신에게 별 이익을 주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 자신이 사회적 개혁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은 구별하면서 거짓 성도들은 상관없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닙니다. 이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성도들에게, 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어야지요.

 

성도라면 꼭 매시간 예배드리고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말씀 보고, 여기저기 전도하고 하는 일만 중요하다 하여 그 일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실천적 영향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저도 종교를 떠나 사회단체, 동호회 등에 많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우리 성도들이 쉽게 따를 수 없는 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친구들의 사업 시작을 즈음하여 고사를 지낸다든지, 특정 동호회에서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 드려지는 시조회, 산제, 풍어제, 시승제 등등 성도들도 사회에 속해 있는 단체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샤머니즘과 토테니즘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여 저는 제가 속한 동호회에서는 고사 즉 시조회니 납회니 하는 제도에 돼지머리 가져다 놓고 콧구멍에 돈 꽂고 절하는 이런 헤괘한 일을 근절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한번은 그런 샤머니즘을 고집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사사건건 고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사를 통해 들어오는 돈이 얼마인 줄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남이 있는 것입니다. 도가 넘치는 그 친구의 수많은 행태와 이간질과 기독교 조롱에 저는 안 된다고 맞서다 지쳐 오죽하면 작정 기도를 다 하였습니다. 동호회에서도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미안하지만 둘 중 하나는 떠나라는 결정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나 싶어 고민하던 중 그 친구의 입원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개월에 걸쳐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병명도 모른채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가 숨지고 난 후 최악의 악연이었던 제가 직접 나서서 그 친구의 유품을 정리하여 경매에 부쳐 작은 성의라도 유족에게 전하고 회원들을 다독여 참여시키고 끝까지 장례절차를 마쳐주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동호회가 갑자기 변화하는 겁니다. 술 문화가 사라지고, 고사문화 사라지고, 가족문화로 변모하더니 급기야 정기 모임에 부부 가족 간의 모임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에는 없었던 모습입니다. 하나, 둘 나도 사실은 집사란 사람이 나타나고, 나도 사실 목사님 자녀란 사람이 나타나고, 형님 그렇게 싸울 때 편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름다운 동호회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어제나 든든하게 하나님은 지켜주시면서 그 일들을 성사시켜 주십니다. 이게 영향을 주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정신 차리고 싸워야 할 문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도들의 가정을 파괴하는 도박문화, 부부간의 도의를 저버리는 음란문화, 자녀들의 정신을 파괴시키는 오락문화, 친구들과 만났다 하면 마셔대는 음주 문화, 가정은 등한 시 한 채 오직 일에만 몰두하는 일 중독 문화까지 우리가 마주하여 싸워야 할 문화는 넘쳐 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건강한 외식문화, 절제된 음주 문화,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문화, 부부간의 도의를 지키는 성문화, 젊은이들의 성결과 순결문화, 이웃과 함께하는 소통문화, 모두가 손잡고 함께하는 공동문화 등등 이러한 성도들의 문화를 일컬어 영향을 주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기는 하는데 안 다니는 사람과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릴 들으면 되겠습니까?

가까운교회를 다니는데 다른 교회다니는 사람과 같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겠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 다른 성도들과 같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겠습니까?

 

나 하나로 인하여 나 하나 잘 되어 볼 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나 하나로 인하여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나 하나가 아닌 우리의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삶이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서서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듯 성도들도 가르침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대의를 우리의 삶에 그래도 실천하여 살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역과 시간에서 마음껏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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