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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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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태 Series 10 성찰의 삶

마태복음7:1-6

 

사람은 자신보다 남의 이야기를 잘하는 편입니다. 더욱이 계급이 지배하는 직장구조나 가정의 구조 등 여러 가지 상황상 한국의 문화가 가져다주는 위계에 의한 사회적, 가정적 분위기는 잘못된 ‘판단주의’(judgmentalism)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행동을 하는 이유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정황보다는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에 따라 판단을 하는 그럼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판단하는 우리의 원칙은 문제가 없는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너는 판단 받을 만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남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으니 하지 말라”라는 결론을 내어줍니다. 남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흠이 많은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그 나물에 그 밥 주제에 누가 누구를 뭐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 사람들이 남을 판단하는 습성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자신을 성찰하는데 너무 무심하다는 것에 초점을 두는 말씀입니다. 즉 아무 의미 없이 남들을 판단하는 일은 내 삶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진짜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자신을 먼저 살펴보고 자신을 먼저 판단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살라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남들을 비난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고 변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울이 없이 물건의 무게를 잰다면 다 각기 무게를 다르게 말하는 것처럼 남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평가한다는 것은 아주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의 말은 대부분이 오해입니다. 전하는 말들은 거의 99%가 잘 모르고 남들이 그러더라 하는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것과 합쳐지면 남의 말들은 거의 들을 것이 못 되는 수준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14장에도 비판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많은 구절들이 할애되어 있음을 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14:1)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고 더러는 두 가지 다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은 날로 취급을 합니다. 이렇듯 저마다의 가치 기준이 다르므로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한다면 똑같이 그 기준으로 남들에게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기 귀에는 안 들려도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욕을 하는 것을 알고 지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접하는 성경말씀 조차 기준이 모호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구약이냐 신약이냐, 율법이냐 복음이냐, 인간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하는 종교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면 매번 결과가 바뀌게 됩니다. 어떨 땐 정당한 결과가 어떨 땐 불의한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다 가져다 붙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교란 사람들이 행복하고 사람들이 잘 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인단 중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받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우리가 우리 삶의 가치와 판단으로 이웃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으면 안 됩니다.

 

2. 나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지만 꼭 비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실을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남을 비판하려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교훈이 많이 기록된 로마서 14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14:10-11)

 

오늘 마태복음 본문도 “네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찌 형제의 눈에 들어있는 티끌을 빼라고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1)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주제도 모르고 형제만 비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형제를 비판하는 너 자신은 얼마나 깨끗하고 정결하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잘남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사실 남을 판단할만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2) 내가 비판하려는 형제가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네가 비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라는 말입니다. 네가 비판을 하는 그 사람도 소극적으로는 네 형제요, 친구요,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 그를 비판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3) 비판할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인데 어찌 너희가 자격이 없는 너희가 내가 사랑하여 내 자녀로 삼은 사람을 비판하려 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지식 그리고 내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다른 생각과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 서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위치에 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부모님 품안에서 자란 사람은  고아들에 대한 목마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 끼니를 굶는 사람의 그 서글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가족과 사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 찢어지는 가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배반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 솟구치는 배반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부도가 나고 사업이 망하고  사고가 나서 불구가 되고 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 연약하여 범죄를 한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다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얇은 지식과 적은 경험으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형편을 비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슬픔을 당한 자라고 해서 자신만이 위로 받아야 하고 이해를 받아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정당하다며 항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되어도 합리적인 행동으로 인정될 수는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을 우리가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헤아리면 그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비판하면 나도 비판을 받고 내가 남을 헤아리면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 비판을 받는 것도 기분이 나쁘겠지만 문제는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각 사람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니까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헤아리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심판이 없다고 했는데 남을 비판하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엄격하게 생각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남을 헤아리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아직도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신도 율법에 따라서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요. 유대교인들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볼 때 남을 비판할만한 자격이 우리에게 없음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비판하려는 그 형제 또한 하나님의 자녀 된 특별한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남을 비판하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에서 나도 율법대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복잡하게 생각할 일 하나도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일이랑 접어두고 도와줄 것은 없는지만 살피십시오. 그러다가 발견되거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돕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화나는 일이 생기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생각 말고 자신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다 보시고 아시는 그리고 영점 영일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께 그 판단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이것이 성도가 지녀야 할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우리 앞에는 그 누구도 판단되는 사람이 없게 합시다.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한사람 뿐임을 알고 자신을 날마다 먼저 성찰하는 자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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