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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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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태 Series 9

의를 구하는 삶

마태복음 6:19-34

 

동서양과 인종을 막론하고 정확한 평균 숫자를 내어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1.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돈이라고 했습니다.

2. 두 번째로 왜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은 “주식이다, 투자다, 부동산이다”라며 돈을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못 버는 사람이 문제이지 잘 버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왕이면 벌어서 부자가 되어야지요.

 

그런데 부자라는 것은 편중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누가 가져가고 난 뒤에도 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것이므로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가져 갈래야 가져갈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돈이란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정된 돈을 가지고 모두가 잘 살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경제 원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많이 가져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출마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무식해서 하는 말입니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엔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라는 미국은 상위 17%만이 삼시 세끼 제때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83%는 제때 밥도 못지 못하는 신세들이라고 합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쫓겨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못 먹고, 직업을 못 구해 돈이 없어 밥을 못 먹고, 의료 보험비를 내지 못해 병이 들어도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건강이 나빠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못 먹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의 모습입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전 국민이 다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못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병든 사람이 더 많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 쓸 정도로 못 배운 무식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부자가 많아지면 가난한 사람도 많아집니다. 같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애플 폰과 삼성 켈럭시 폰을 같이 살 수는 없고 하나만을 골라 사야 하듯이 돈도 한쪽으로 몰리게 되면 한쪽은 당연히 갖을 수 없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번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왜 중요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벌어들인 돈 만큼 누군가는 허덕이고 굶주리고 가난해 져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그 답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돈에 대해서 우리에게 먼저 대 정의를 내려 주십니다.

“너를 위하여 돈을 쌓아 두지 말아라.”

 

경제 원리에 의하면 돈을 쌓아 둔다는 것은 서로를 죽이는 것입니다.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이 사회를 망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생각만큼 잘 안 따라오시지만 오래 전부터 동전 모으기를 하고 있습니다. 취지는 돼지 저금통을 가득 채워지면 가져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돼지 저금통이 나라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그 돼지 저금통에 들어간 5센트짜리 동전 때문에 은행에 5쎈트 동전이 없어서 그 5쎈트를 만들기 위해 100불이 넘는 돈이 지불 된답니다. 그런데 그 돼지 저금통이 어디 한 두 개입니까? 어디 한 두 푼입니까? 한국이든 미국이든 호주든 이 가둬둔 돈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동전, 버려진 동전, 관심 없는 동전 모아 다시 사회에 환원하므로써 국가적 재정 손실도 막고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구제합시다”라고 하면서 이 운동을 펼쳐 가까운교회가 3년간 모은 돈이 61불 10쎈트. 뭐 많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61불이 모여진 것은 사실입니다. 뭐 따라오든 안 따라오든 관심을 갖든 안 갖든 저는 한 두 명의 성도들과 함께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도 돈을 쌓아두면 이런저런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하여 돈을 잘 사용하라고 계몽을 합니다만은 성경에서는 왜 돈을 쌓아 두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주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정욕의 목적에 의와 정의를 가둬두기 때문입니다.

 

왜 모으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액수가 커지고 불어나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집니다. 돈이 돈을 벌 듯이 조금만 모아지면 이것들이 서로서로 시너지를 형성하여 큰돈이 됩니다. 그래서 사용하지는 않고 돈을 버는 곳에만 굴려 부풀리는 일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돈이 모아지는 만큼 누군가는 그 돈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내가 가둬둔 돈 때문에 그런 자들이 돈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번 것으로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은 진심으로 후안무치한 사람으로써 돈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지금은 돈을 쓸 때가 아니니 나중에 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맹세에 불과합니다. 돈으로 이룰 수 있는 정의가 궁색한 변명과 명분 때문에 내 안에 갖혀 버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아 놓은 돈은 악한 자들의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아 놓은 돈 때문에 악인이 결집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시지 않나요? 여러분의 집안에는 강도 없습니까? 여러분의 집안에는 도둑 없어요? 벌어도 벌어도, 모아도 모아도, 사도 사도, 다 집어다 써버리는, 다 속절없이 가져가 버리는 그런 허가 받은 강도들 없어요? 어디 그뿐입니까? 벼라 별 사기꾼들의 등쌀에 당하지 않아도 될 수도 없는 안 좋은 일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항공 조회장의 아내와 두 딸이 이상합니까? 양진호 회장의 갑질과 폭력과 그 악함이 이상합니까? 한화그룹의 총수 아들이 야구 배트로 한 대에 10만원씩 뿌리며 매질하는 것이 이상합니까? 아니요. 당연한 것이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부모가 쌓아 둔 돈 때문에 결국은 자녀들이 그렇게 된다고 성경은 이미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에도 나중에 삼수갑산엘 갈 땐 가더라도 그런 돈 갖고 실컷 쓰며 살아봤으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가지 길에서 만나는데 “돈 많은데 그런 죄 짓는 것쯤이야” 하고 살게 된단 말입니다. 돈은 쌓아두면 사람이 교만해 집니다. 돈을 쌓아두면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됩니다. 돈을 쌓아두면 사람답게 살래야 사람답게 살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쌓아놓은 돈 위에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 강원랜드라는 국내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카지노가 있습니다. 매일 인산인해지요. 철도 없고 비수기 성수기도 없습니다. 번듯한 직업이 있는 사람, 부모가 돈 좀 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들 중 이 강원랜드 없이 못사는 사람 많습니다. 돈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둘 중 이 강원랜드에서 잿팟 안 터져 본 사람 없습니다. 큰돈 한 번씩 다 만져 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한 끼 먹을 돈이 없어서 거지꼴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고급차도 저당잡히고, 수 십장의 신용카드 한도 채워 연체되어 있고 연인 전화하여 돈 꾸기 바쁘고, 온갖 문서란 문서는 죄다가 팔아 도박장에 붓고 있습니다. 취재 기자가 그 중에 한 명에게 “지금 누군가 돈을 좀 준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바로 “다시 들어가 배팅해야죠. 저 안에는 돈이 꼭 차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 돈이 자기 것인 줄 압니다. 그 중에 번듯한 직장과 가정과 집과 좋은 승용차가 있었다는 한 명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중독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읽고 가족잃고 직장잃고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고 여기있는 강원랜드만 영원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같은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도박도 경제 원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따지 못합니다. 누군가 따면 누군가는 잃습니다. 왜 그런 것을 읽지 못하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쌀을 사야 할 돈으로, 자녀들 학비내야 할 돈으로, 자신의 사무실, 공장, 가정 월세 낼 돈으로 도박장에서 탕진하고 결국 나중에 쥐약을 입에 털어넣는 자가 바로 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딸 것이라는 희망이 결국 누군가는 돈을 잃고 망할 재앙의 공식이란 것을 왜 안 보고 사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말해도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점을 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돈이 집안을 망치고 사람을 망쳐 놓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돈을 쌓아두면 주객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길이 잘사는 길인가?

 

여러분 세계 제1의 복지국가이자 최대 선진 낙농 국가인 덴마크를 잘 아십니까?

그렇다면 덴마크의 국부 그룬트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농촌운동가들과 신학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1783년 9월8일 덴마크의 우드비에서 태어난 그룬트비는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외치며 국민 성격개조 운동과 농촌 부흥운동을 벌여 오늘의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입니다. 덴마크라고 하면 지금은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부유한 나라를 떠올리지만 그룬트비가 살던 19세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 상태였습니다. 남겨진 스칸디나비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며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습니다.

 

그룬트비는 ‘국민의식 구조가 개혁돼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성인기숙교육학교 설립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국민고등학교였습니다. 기숙학교는 자발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통해 소극적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갖도록 가르쳤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을 뜯어먹고 살 궁리만 하는데 아니 그럴려고 국회의원이 되는데 그룬트비는 국민을 살리기 위해 온 몸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 전역으로 확산돼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국민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술과 긍정적인 의식을 갖고 성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목격한 덴마크 국민 사이에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룬트비가 내세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3애(三愛)정신은 곧 덴마크 국민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 기적도 없고 요행도 없다. 오로지 노력하는 사람만이 거둘 수 있는 진리만 있을 뿐이다”라는 사실을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에게 깨우쳐준 것입니다.

 

그룬트비는 낙농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의 목사들을 먼저 설득했습니다. 그룬트비는 목사들이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전령이 돼야 한다며 3애정신과 함께 낙농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각 지역의 교회는 낙농기술을 가르치는 주민센터가 됐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운동이 확산됐습니다. 덴마크의 위대한 중흥이 교회로부터 시작됐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 덴마크는 어떤 나라가 되었습니까? 세계 1위 복지국가, 세계 1위 낙농국가, 세계 1위 민주국가, 세계 1위 실업률 없는 국가, 세계 1위 돈을 쌓아 놓지 않는 국가, 세계 1위 부모가 재산 상속하지 않는 국가, 억지로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 정치인 부패가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덴마크는 재벌 2세가 없고 덴마크는 재벌의 갑질도 없고 덴마크는 정치인들의 갑질도 없으며 심지어 뭐가 갑이고 뭐가 을인지 그 뜻도 모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해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겠다.

 

덴마크는 그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믿지 않았습니다. 먼저 돈을 쌓아 두어야 한다며 가정마다, 직장마다 교회마다 심지어 산속 사찰에서까지 돈을 쌓아 두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을 밝게 비출 의는 어디서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는 어떤 모습이 더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기술을 배우기 전 돈부터 배우고, 돈으로 선과 의를 이루는 방법도 배우기 전 자신의 배부터 부리겠다는 욕심을 먼저 배운다면 돈은 우리를 결코 선으로 의의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적은 돈으로도 큰일을 이루지만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은 평생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삽니다. 사실은 돈 때문이 아니죠. 그 사람의 삶의 자세가 문제지요.

 

오래전 대한민국 정부가 유흥업소 여인들에게 직업 훈련을 시켜 재취업의 길을 열어 준 적이 있습니다. 무려 천여 명의 여인들이 재생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정부는 앞다퉈 그 공적을 모든 신문사들을 통해 보도하게 했으며 최대의 공적으로 자랑하기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직업 훈련을 통해 재취업을 했던 여인들 중 90%가 다시 유흥가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유흥가에서 벌던 수입에 5분의 1도 안 되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10%는 돈이 적고 많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벌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직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한 여인은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 봉투를 받아 든 순간, 내가 그렇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생애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돈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여인을 주목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른 길을 가는 자들을 조롱하고 핍박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의 결과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돈 앞에 자랑스러움을 느꼈던 그 여인은 지금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동대문 패션 상가에서 년 매출 10억을 웃도는 사업가로 성장했고 돈 때문에 우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액수가 적다며 다시 유흥가로 돌아간 90%는 어찌 되었을까요? 우리는 돈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돈을 성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해야지 내가 돈을 따라다니는 그런 모양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오늘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그 정도의 먹고 살 수 있는 능력들은 다 주셨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죠?

 

자기가 게을러서, 자신이 욕을 짓을 하여 온 갖 곳에서 기피 대상이 되어서, 맨날 시고만 치고 불성실해서 못사는 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모든 기능과 생각과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네, 충분히 주셨습니다.

 

거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족하는 것입니다.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 옆에 계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의 의를 전하고 그 의를 이웃에게 증거하기 위해 내 삶을 튜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에 주력하는 제자들에게 자녀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살리기에 충분한 조건인 것입니다.

 

눈이 뻘게져서 돈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안 주시고

돈이 필요 없는 자들에게는 돈을 주시면서 더 큰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의를 위해 살지 돈을 위해 살지 이제 여러분들이 선택하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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