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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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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자

마태복음 5장 38-48

 

이 세상의 선과 악을 여러분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만일 선과 악의 기준이 분명 하다면 선악을 판단하기가 매울 간단할 텐데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6장을 보면 사람은 심는 대로 거둔다 면서 악을 심으면 악이 나오고 선을 심으면 선을 열매 맺는다 고 합니다.

 

그러니 좋은 것을 거두기 위하여 서는 선과 악을 먼저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심든지 악을 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선악 간에 무슨 일을 행하든지 하나님의 눈을 속일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도 덧붙이십니다.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원수도 없고 원수가 있을지라도 원수 갚을 일조차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당하게 되거든 철저하게 더 당하라고 하시며 심지어 오른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 대주라고 하십니다. 상상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럼 선이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0장 30절부터 36절 말씀에 진정한 선한 이웃에 대한 예화가 나옵니다.

 

이 예화의 주제는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바리새인인 제사장과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와 성전 일을 맡아 보는 레위인이 버리고 간 한 강도 만난 자를 유대인들에게 비웃음당하고 수치스럽게 여김을 받았던 유대 혼혈인 사마리아인이 거두어 모든 비용은 물론 장차 들어갈 비용까지 책임지는 의로운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의 사마리아인은 민족을 버리고 강국에 기생하여 산 배신자들의 자손이라는 것이지만 사마리아인들의 입장에서의 유대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원수들로 여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수를 사랑하란 주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선행은 악인에 대해서 우리가 펼치는 감정과 행위를 포함합니다. 악인을 악하게 대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매우 정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성경에 위배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악행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선행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예화는 교회뿐만 아니라 미국 법률계에선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란 이름으로 이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한 모든 행위는 범법이 될 수 없다”란 법의 원리로 승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선이란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놓는 것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선행은 갈라디아서 6장에 잘 나타나 있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1.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과거 몇 번 한 것이 선행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선행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행은 과거 몇 번 한 것이 아닌 현재도 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할 것인 진형형입니다. 하다가 멈추는 것은 진정한 선행이 아닌 근본적으로는 나의 감정이요, 나의 명예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요, 환경에 따라 일시적인 판단에 나온 이기적인 자선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행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가다가 곧 가지 아니하면 가지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려면 끝까지 하는 것이 선행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6: 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선행은 뭘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오히려 나를 버려야 하고 내 시간, 내 돈, 내 정력을 그냥 내어놓아야 합니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보상도 바라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혹자는 쉽게 지치고 낙심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저앉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동물원의 동물 쇼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바로 먹고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묘기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척척 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관람객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내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는 것을 아는 경험 때문입니다. 만일 더 이상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서 묘기를 하라 하면 그 동물들이 계속 묘기를 부릴까요? 아닙니다. 낙담하고 실망해서 더 이상 묘기는 이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조련사를 해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한다는 이유가 바로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내게 무엇이 돌아오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동물원의 사육사들에게 조련된 그 동물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선행일까요?

 

 수많은 고아원 원생들 앞에서 산 같은 라면을 쌓아놓고 사진찍기에 열 올리는 국회위원 들...

 어렵고 가난한 소수자들을 위한다면서 연간 지원하는 금액이 그 지원 장면을 촬영하고 홍 보하는 홍보비에조차 못 미치는 재벌들의 보이기식 선행들...

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외면한체 교회조차 누가 안 볼까 조그마한 구제에도 대단한 일을 하는냥 선전에 안간힘을 기울이는 선행...

 

주님은 이런 것을 결코 선헹이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내 입 때문에 하는 선행이다보니 내 명예 때문에 하는 선행이다보니 다양한 이유에서 그들의 선행을 멈출 만큼 그들을 지치게 하는 것입니다.

지친다는 것은 자신의 목표만 있을 뿐, 성도의 목표는 아직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떠난 진정한 선행은 누구도 모를 새 힘이 솟고 용기가 나며 담대한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것 같아도 마치 남이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고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선행을 보일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3. 기회를 보지 마라

갈라디아서 6장 10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이 말의 뜻은 선행을 할 기회가 오면 하라는 말로 들리지만 사실은 기회가 오든 안 오든 하란 말입니다. 선행이란 그런 것입니다.

 

선택과 기회의 사이에서 택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하라는 말입니다. 즉 선행은 내 인생의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행의 기회가 올 때마다 사실은 강도를 만난 한 유대인을 보고 피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자신들의 명분을 내세워 피하기 일 수입니다. 그러면서 온갖 선행의 기준이 자신인 것처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자신의 의롭지 못한 의를 드러내기 힘쓰는 것입니다.

 

4.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 잘해라

갈라디아서 6장 10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잘해라

 

우리는 가끔 성도 간에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모습입니다. 부모도 자식들 간의 싸움을 제일 싫어하는 것처럼 자신이 창조한 성도들끼리 싸우고 다투고 불화하는 것을 좋아하실 리 없습니다.

 

응당 서로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협력해야 할 때조차 마치 모래처럼 합쳐지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의좋은 형제가 많건만 그런 것은 동화에나 존재한다며 두 눈을 감고 멀리하고 밥만 먹으면 죽어라 형제간의 싸우는 집안의 모습을 어디서 보고 와서는 자신들은 거기에 비하면 양호하답니다. 부모의 마음이 맘이 아닌 집안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선행 중 가장 선결되어야 할 대상은 믿는 자들끼리의 선행입니다. 그것이 불신자들이나 악한 자들이 바라볼 때 귀감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다 같은 한 아버지인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성도들 아닙니까?

교회가 다르다고, 구역이 다르다고, 교단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고 뜻을 달리하고 그렇다면 이는 마귀의 간교한 역사지 진정 하나님의 뜻은 아닌 것 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성도들은 같은 성도 간에 다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성도 간에 필요에 따라 무조건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의 것으로 알고 기쁨으로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멈추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기회를 보지 말고 믿음의 식구들을 더 더욱 사랑하는 이 네 가지 원칙을 갖고 산다면 여러분의 선행을 진정 선행답게 해주는 원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우리 주님의 약속이 있으십니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란 말씀입니다.

그 거둔다는 말이 무엇을 거둔다는 말인지 참뜻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땅에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우리를 위해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이 온 인류를 구속하신 것처럼 우리의 그러한 선행은 우리에게 라기 보다는 우리가 남길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지금보다 더 살기 좋고 지금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세상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런 예견을 해 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행한 그 선행들의 보상을 여러분이 못 받을지라도 변화되어가는 이 세상에 작은 힘이 되어 남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호화로운 궁전에서 살지 못했다고

그들이 산해진미를 먹지 못했다고

과연 이 땅위에서 축복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일까요?

그들은 과연 불행했단 말일까요?

 

진정 선행은 이 땅위에 아무 흔적도 남김없이 다 쏟아 놓는 것이다.

멈추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기회를 보지 말고

특히 믿음의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선행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제는 무엇이든 내가 받아야 복이라는 원시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진정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드리는 참된 선행을 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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