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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8.09.23 20:52

버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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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미학 시편 144:1~4

 

이 땅의 자연계에는 사계가 있듯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 호기심이 풍성한 어린 유년시절이 있고,

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젊은 청년기가 있습니다.

 이루어 놓은 것을 착실히 다져 나가는 결실의 중년이 있고,

 풍부한 경험으로 완숙해진 삶을 정리하는 노년기가 있습니다.

 

어린 유년시절은 봄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씨를 심고 가꾸는 시기입니다.

젊은 청년시절은 여름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의 시기입니다.

결실하는 중년시절은 가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여물어 가는 시기입니다.

정리하는 노년시절은 겨울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봄을 위해 안식하는 시기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생애로 다시 말해보면

 

예수님의 탄생은 봄입니다. 온 인류를 위해 하나의 씨로 이 땅에 심겼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름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용광로보다 더 뜨겁고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은 가을입니다. 붉게 물든 단풍 같은 그의 피는 인류를 구속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겨울입니다. 그는 곧 봄처럼 부활하시기 위한 안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전부 4계절이 있습니다.

 

그 중 오늘은 가을....즉 결실하는 중년의 계절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아직은 젊고 패기 있는 청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도 곧 맞이하게 될 중년의 시기가 오기에

미리 들어두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우리는 결실하는 계절을 가을이라고 합니다.

 

Autumn : 일 년 내내 익은 곡식과 과일을 풍성히 담는다 라는 의미가 주된 의미

Fall : 떨어진다는 의미가 주된 의미

 

가을을 Autumn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무렵부터인데요. 더운 여름에서 추운 겨울로 계절이 바뀐다는 의미와 수확의 의미가 더해져 현재의 Autumn이 탄생했습니다.

 

Fall은 16세기 중반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잎이 떨어진다’의 의미의 ‘fall of the leaf’로 쓰이다가 짧게 줄여 Fall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을을 표현하는 단어 ‘autumn’과 ‘fall’은 17세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에 의해 미국에서도 사용됐어요.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은 점차 라틴어에 어원을 둔‘Autumn’을 선호했고,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에서는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Fall’을 사용했답니다. 이러한 성향 차이로 ‘Autumn’이 영국식, ‘Fall’이 미국식 표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주로 Autumn의 뜻인 담는 것을 가을로 여기고 따라서 추석도 풍성히 담는 의미로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진정한 가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 삼라만상의 입장에서 보게될 때 가을은 전부 내려놓는 Fall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1) 가을은 버림의 미학(美學)이 있는 계절입니다.

 

청청하던 나뭇잎도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열매가 익어 떨어지고, 곡식도 여물어 떨어지고

파도처럼 일렁이던 논밭도 삭발한 머리처럼 시원하게 떨어져 나가는 것이 가을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중년이 되면 힘이 빠지고 이가 빠지고 머리가 빠지듯이 인생에 있어서 중년은 가을처럼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계절입니다.

 

나무는 나뭇잎과 열매를 버리는 시기입니다.

여름은 식지 않을 것 같았던 높은 열기를 버리는 시기입니다.

모든 생물은 성장을 멈추는 시기입니다.

그리고는 지나 온 여정을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기독교는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림’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종교이며

우리는 ‘버림의 가치’를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생명을 버리시는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자신이 걷는 그 길을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똑같이 걸으며 자신을 버려야하는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는 이 말씀에서 우린 성도로써 가을의 중후함을 가져야 합니다.

나이들어 아직도 자아를 못 버리셨다면 우린 이 가을의 중후함을 갖지 못한 자들입니다.

중년은 넘치는 힘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 비운 넉넉한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산다고 하는 것은 아낌없이 자기 몸을 버리신 가을 예수님의 버림을 온전히 따라 실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가을은 비움의 진리(眞理)를 알게 하는 계절입니다.

 

우리에게는 각기

 

소유의 차이, 배움의 차이, 모습의 차이, 재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로 삶이라는 그릇을 채우며 서로의 차이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으로 사람 간의 차이를 판단하고 그 사람의 본질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사람의 본질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그릇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고 있는 그릇이냐 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 가 아니라 어떻게 쓰여지느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냐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릇 중 가장 쓰임 받을 수 있는 그릇은

금이 가득 차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에도 쓸 수 없는 그릇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그릇일지라도 언제고 사용할 수 있는 빈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릇이라면 우리의 그릇을 비울 수 있는 비움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릇의 본질은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다음을 위하여 비어 있어야 함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고 싶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세속의 본질은 버리고 비워진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자아(自我)를 갖출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가을은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입니다.

 

근대 철학자 데까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데까르트는 “나”라는 존재의 근거를 신으로 봤기 때문에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신은 존재한다 고로 나도 존재한다입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신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살고 무엇을 하고 살았고 누굴 위해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생명이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듭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잘 몰랐는데 인생을 돌아보니 내 생명은, 내 인생은,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는 사실이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도 한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주님은 내 생명을 가지고, 내 인생을 가지고 수많은 일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 세상의 것으로 채우는 존재인가?

 세상의 것을 비우는 존재인가?

 

서로를 거스르지 않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자신은 소멸해가는 자연의 이치와 원리의 핵심인 가을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성찰하며 깊은 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방법을 통해 이청득심(以聽得心) 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즉,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마음을 얻는 지혜라는 말입니다.

 

듣는 귀가 없으면 시끄러운 입만 바쁘다는 교훈인데 지금 이 시간 내 맘의 문밖에서 주님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시간이 결코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낙엽이 지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논과 밭의 오든 곡식이 잘려나가는 추수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만일 그런 소리가 들리시는 분들이라면 나의 인생 가을도 느낄 수 있는 분들입니다.

 

나를 버릴 수 있는 용기

나를 비울 수 있는 믿음

그래서 텅 빈 마음으로 버림의 미학으로 완숙한 인생을 얻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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