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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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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마태복음 5:13-16

 

2011년 6월 19일 골드코스트교회 주일 낮 / 2018년 8월 26일 가까운교회 주일 낮

 

호박밭과 수박밭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박밭에 있는 호박 하나는 늘 수박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수박들은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으며 얼굴도 예쁘고, 때깔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밤 그 호박은 자신의 몸에 세로 줄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떼구르르 몸을 굴려 긴 줄을 끌고 수박 밭으로 건너가 슬며시 몸을 숨겼습니다.

 

날이 밝고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를 무렵 밭머리로 중장비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호박과 수박들은 수군수군 거리며 머리를 추켜세우고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커다란 트랙터 운전수에게 말했습니다. “아 오셨군요. 올해는 호박이 값이 좋으니 이 쪽 수박밭을 싹 갈아 엎어주세요. 올 해 수박 값이 똥값이라 수확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결국 수박이 아닌 것을 한탄하면서, 거짓으로 수박 행세를 했던 호박은 트랙터의 육중한 바퀴에 깔려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땅에서 세상적인 가치로 화려하게 살아가지 못한다고 억울해합니다.

그래서 수박처럼 줄을 긋고 살아갑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는 호박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박인 척 하는 호박이 많아서입니다. 교인 답지않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서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에 관련된 것이 아닌 교인들의 행실에 관련된 비난과 공격이라는 것입니다.

진리 때문에 공격받는 것은 핍박이지만

우리의 잘못된 행실,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해서 받는 공격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어져 밟힐 뿐’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교회가 맛 잃은 소금처럼 되어 세상 사람들의 공격에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항할 힘은 교회가 영적권위를 회복할 때 주어집니다.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착한 행실입니까? 착한 행실이란 빛 된 삶인데 구체적으로 빛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속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빛은 따뜻함, 직진성, 희생성이 있습니다. 이 빛의 속성 세 가지를 근거로 오늘날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우리들이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는 따스한 열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빛을 가장 먼저 만드신 이유는 세상 창조도 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십니다. 기본을 갖추어야 후속적으로 이후 세상을 만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려면 불부터 킵니다. 어두운 길을 가려면 불을 키고 가야 합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세상은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빛은 열과 같은 맥락입니다. 빛은 언제나 뜨거운 것은 것은 아니지만 열은 언제나 빛을 내고 있습니다. 빛은 열은 아니지만 열은 언제나 빛이므로 이 둘은 부득 불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열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작게 말하면 따스함이요 크게 말하면 열정입니다.

이는 마치 전열기 같아서 이를 사용할 때 열 조절 장치가 없이 그냥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따스함과 냉철함과 열정과 냉담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 조절 장치가 없는 사람을 인격장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열 조절 장치 안에 사랑과 화합과 용서와 이해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있어야 빛과 같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인 것처럼 세상에 성도들 때문에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없으면 죽겠다는 비명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직진성입니다.

빛은 직진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직진성은 정직과 공의를 의미합니다. 빛 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께 정직하여야 합니다. 정직성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결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 11:3에 보면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잠언 13:5에 보면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움을 당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교가 더 부패하여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종단을 좌우하는 조계종의 타락이 밝혀져 불교가 심히 욕을 먹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기 위해 거짓은 물론 어린 아이들도 웃을 비상식적인 꼼수로 교회를 세습하는 목사들의 행태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를 등지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의 끊임 없는 아동 성추행에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사죄성명을 밝혀 가톨릭도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세계의 대표적인 종교들이 왜 이럴까요?

빛의 삶은커녕 빛을 가리고 어두움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공의를 상실하면 다 실패한 것입니다.

성경이 빛과 같은 공의를 정직을 교회의 상징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헌신입니다.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듯 빛은 어떤 물질이 타야 만들어집니다. 즉 빛도 소금도 희생을 전제로 얻어지는 것들입니다.

성도가 빛 된 삶을 살려고 하면, 자기를 불태우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요, 기독교의 핵심적인 사상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줄 때 헌신하는 것이며, 이것이 빛이 될 것입니다. 희생하면 바보 되는 세상 속에 살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십자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바로 헌신성입니다. 내가 먼저 낮아지고, 내가 먼저 져주며, 내가 먼저 섬기고, 내가 먼저 베풀고, 심지어 내가 먼저 죽어주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정신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고전 1:18). 헌신성이 없이 결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며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나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 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냐.

 

그렇습니다. 나 한사람이 정직해졌다고 세상이 정직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 한사람이 작은 촛불을 켰다고 해서 세상의 어둠이 걷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촛불 되고,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촛불 되면

결국 세상도 밝아지리라 믿습니다.

 

아니 세상이 밝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빛나는 행실의 빛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빛처럼 따스하게 정직하게 헌신하며 살아갑시다.

반드시 그렇게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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