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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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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Series 1 씨 뿌려진 밭

마13:24-30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고차원적인 수사학이나, 사람의 마음을 쉽게 빼앗는 기술로써의 언변이나, 경험이 많아 달변으로써가 아니라 대부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들을 비유나 예화들을 들어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비유의 소재는 언제나 풍부하였고 우리 실생활에 매우 적합하였습니다. 추상적이거나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철학보다는 눈에 보이는 생활과 삶의 형태 속에서 생각하고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세수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씻기를 말씀하시고 음식을 드시면서 영의 양식도 말씀하시고 육신의 각가지 질병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보면서 영적 질병과 사고도 예방하는 등 예수님의 예화와 비유는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비유와 예화를 많이 쓰신 이유는

 

 예수께서는 성경에 자신의 인생을 연관시켜 인생과 성경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 진리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에 원칙만 알면 쉽게 생활화할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 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린 얼마 후 씨 뿌려진 밭을 보고 한 말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이 있기 전에 우리가 지난 4주간 동안 사람의 마음 시리즈를 통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과 그러지 못한 마음을 살펴봤는데 바로 그 말씀에 이어 따라 나온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깐 아주 연관이 깊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도 천국의 환경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으로써 천국 백성들이 아직 천국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천국 소식을 전하므로 천국 백성으로 거듭나게 노력하는 중 나타나는 현상을 비유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즉 전도하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천국과 천국 복음의 전파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고 어떤 자세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씨가 뿌려진 밭을 농부들의 눈으로 유심히 보셨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릴 때는 최고의 씨를 가려내어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품종이 안 좋은 씨는 좋은 농부라면 절대 뿌릴 리 없습니다. 물론 뿌리기 전에 밭도 잘 가꿔놨겠죠. 그리고는 풍년을 꿈꾸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밭을 이용하는 무리가 농부 말고 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숨어있는 원수들인데 자신들의 씨도 이곳에 몰래 뿌려놓는다는 것입니다.

 

뻐꾸기가 알을 낳을 때는 다른 둥지에다 자신의 알을 낳고 그 둥지 주인 새가 낳은 알은 밖으로 밀어 버린다죠? 뭐 딱 떨어지는 비교는 아니지만 짓지도 않은 둥지에 자신의 알을 밀어 넣는 것과 자신이 가꾸지도 않은 남의 밭에 자신의 씨를 뿌리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행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암튼 문제는 이 씨가 싹이 트고 자라나면서 발생합니다. 밭 주인은 종들을 시켜 최상품 씨앗을 심어 놨는데 다른 종자, 즉 주인의 입장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 자라나는데 이런 것을 성경은 가라지라고 표현했습니다. 가라지란 의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 필요 없는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선 이 가라지의 안 좋은 역할을 살펴보면

 

 알곡들에게 필요한 양분들을 먹습니다. 따라서 알곡들에게는 부족 할 수 있습니다.

 알곡들이 차지해야 할 땅을 비좁게 합니다. 그래서 뿌리가 건강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좋은 역할도 있는데

 

 비바람에 불 때 알곡들이 기댈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을 해 줍니다.

 병충해가 왔을 때, 혹은 곤충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밭에 왔을 때 많은 양의 가라지들이 알곡 대신 희생을 합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가라지도 나름 역할은 하고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가라지들을 목적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직원들이 주인에게 밭에 들어가 가라지들을 모두 뽑아 버릴까요? 라고 묻습니다. 이때 주인이 직원들에게 한 말이 오늘의 핵심 말씀입니다.

 

주인은 직원들의 질문에 의외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1. 가라지들을 없애려다 잘못하여 알곡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치면 벌레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각종 유기물까지 함께 죽습니다. 이것은 먹이 사슬을 끊는 행위가 되어 자칫 자연 재앙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정수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세상은 필요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나름 다 필요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악한 자들도 어쩔 수 없이 한곳에 모여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서로 돕고 어떨 때는 서로 빼앗고 그러면서 끝을 행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입장에서는 어떨 때는 알곡을 위해 가라지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가라지의 존재를 주인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연장 시켜주는 것입니다.

 

2. 또 하나의 문제는 현재의 알곡도 쓸모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추수를 해봐야 껍질만 그럴듯하게 있지 속에 알곡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인은 알곡이 익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속이 차지 않은 알곡이나 가라지는 가치적인 면에서 쓸모없기는 똑같습니다. 모습도 같습니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 됩니다. 다만 농부는 알곡의 미래를 알기에 결국은 농부의 기다림이 알곡을 만드는 것입니다.

 

혹자들은 말합니다. 세상이 더러워 졌으니 말세가 다 되었다고. 하지만 진정한 말세는 가라지들의 세상이 아니라 알곡들의 세상이며 주인의 창고에 가득 찰 알곡이 있어야 낫을 대는 법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말세입니다. 따라서 말세는 알곡에게는 축제요 쭉정이에게는 저주입니다. 그 말세가 하나님 입장에선 추수인 것입니다.

 

3. 결국은 불태워질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입장은 현재가 아닌 미래입니다. 지금의 현상을 보지 말고 다가올 미래의 결과를 보란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눈을 신앙 또는 믿음이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1장은 그런 눈을 갖은 위대한 신앙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제 그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예언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고 만만치 안다는 것을 강하게 본문에선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가라지들의 형통함에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가라지들의 겁 없는 권세에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지금 가라지들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다 태워 없어질 존재들이요 우리는 천국의 백성들로 거듭날 존재 들입니다.

그래서 밭에 씨를 뿌리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갖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들은 땅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일이 점검한 뒤에 뿌리 는 것이 아니고 일단 뿌려야 합니다. 가라지가 나면 어떻게 하지? 알곡이 잘 자라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은 도를 넘은 생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걱정할 일이지 종이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 성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언제나 만나면 우리 교회 나오라며 권면하는 친구가 있다면서 요즘 몸이 더 불편하여져서 결국은 나오기가 힘들게 되었다며 결신 하지 못했음을 심히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를 나오고 안 나오고는 그분의 사정이고 성도님은 이미 전도를 하신 것입니다. 추수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 분이 안 나오신다고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이미 전도하신 것이고 이미 승리하신 것입니다. 요즘 저런 사람은 교회 나와서는 안 된다고 미리 심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로 당파 만들어서 저런 사람은 우리 교회 나와서는 교회 발전에 해가 된다면서 오게 해서는 안 되다는 말들이 얼마나 난무하는 세상입니까?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이 평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평생을 우리교회 나갑시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당하게 “우리교회 나갑시다”라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귀중한 소리인지 아십니까? 교회를 나오고 안 나오고는 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씨뿌리는 자들의 지정한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2) 사단의 옥토도 교회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만 교회가 옥토가 아니라 마귀들에게도 교회는 옥토라는 것입니다. 이곳에 마귀가 들어오면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 악으로 물들여야 하지요, 젊은이들 하나님 말씀대로 못 살게 해야지요, 신앙으로 부부갈등 만들어야지요, 돈 문제로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를 못 하게 해야지요,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갈라서게 해야지요. 그러니 교회는 마귀들의 옥토 중에 옥토이므로 교회 안에는 언제나 가라지들이 득실거리게 되어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씨뿌리는 자들은 그런 사람의 모습을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 바라봤다가는 당장 시험에 들어 아무것도 못 하는 앉은뱅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3) 씨를 뿌리는 자들은 추수할 열매를 미리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추수는 내 실적이나 내 소망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으로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도맡아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일로 우리에게 근심을 가져 다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씨 뿌리는 자는 맡길 것은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인도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교회도 내가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다 만드시고 성장시키시고 양육시키시어 주의 일군을 삼으시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밭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심으시고 하나님이 키우시고 하나님이 결실하게 하셔서 기쁨으로 추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을 믿고 주인이 우리에게 쥐어 주신 씨를 믿고 오직 순종하며 이 씨를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묵묵히 그 일만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언제가 그 가라지들을 묶어 태울 때 여러분들은 단 한 명도 그곳에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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