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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8.07.21 13:47

천국 Series 2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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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Series 2 겨자씨

마13:31-32

 

오늘 겨자씨의 비유는 두 가지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첫째 상기되는 것은 가장 작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은 무엇일까요? 따지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한국은 가장 작은 것을 “쥐꼬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가장 작은 것을 “겨자씨”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 보다 더 작은 것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인식과 관념에 따른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속담에 “겨자씨만큼도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쥐꼬리만큼도 희생할 줄 오르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한번 보도록 하지요.(사진 1, 2, 3)

 

두 번째 상기되는 것은 가장 큰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큰 것은 처음부터 큰 것은 없습니다. 자랐거나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것은 Element라는 원소나 요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태초의 사람이 흙으로부터 시작한 것처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남자의 정자와 보이지 않는 작은 여성의 난자가 만남으로 잉태되어 그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의 몸을 형성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처음부터 큰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겨자씨도 아주 조그마한 씨인데 이 씨가 자라 변해서 길이 4 미터 폭 4 미터의 나무치고는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물보다는 커다란 식물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 탄 자가 겨자 나무를 지나면 앞과 뒤, 위와 아래가 보이지 아니할 정도로 크게 성장합니다. 씨가 자라 겨자 나무가 된 모습을 보겠습니다. (사진 4, 5)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도 천국을 알려주시기 위한 소식인데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1. 생명입니다. (1차 조건:정체성)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천국은 지금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실체 같아도 언젠가는 영원히 누리게 될 세계인류의 보금자리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수없이 많은 돈이 있으면 뭐합니까? 내일 죽으면 끝이잖아요. 그래서 사람은 돈보다는 생명이 먼저라야 합니다. 생명 보장해 놓고 돈도 버는 것이고 생명 보장해 놓고 권세도 갖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무인도에 콩 한 줌과 금괴 천 개가 있다면 어떤 것이 과연 귀중할까요? 생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금괴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지만 생명이 들어가 있는 콩 한 줌이면 수많은 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괴보다 콩 한 줌이 더 귀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생명의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뭐래도 생명의 힘을 먼저 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겨자씨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따라서 겨자씨의 의미는 아직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미래의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이 겨자씨 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씨앗을 우리의 맘에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씨가 곧 우리의 힘이 되게 하며 생명이 되게 하며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장입니다. (2차 조건:환경)

 

씨는 작은 씨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곧 씨는 씩으로 변하고 가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쉬지 않고 반복하다 급기야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씨였던 시절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지만 일단 나무로 성장한 후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가치 있는 나무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늘을 만들어 쉼을 줄 수 있고 열매를 맺어 사람으로하여금 먹을 수 있게 해주며 종국에는 단단한 나무를 베어 가구와 각종 필요한 도구로 변하여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장의 결과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질도 변하면 그만큼 가치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작게 마련입니다. 이 말은 가치도 그만큼 적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눈에 띄게 자라며 눈에 띄게 성장하고 그 성장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 받게 되어있습니다.

 

더불어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보유한 모든 것의 양도 늘려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이나 학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나, 땅이나, 건물이나, 생활 반경의 유무형의 동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납니다. 이런 것들은 성장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질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양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학교 교육을 1년도 받지 못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통나무집에서 살았고 게다가 8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계모가 참 훌륭한 분이 들어와 링컨은 계모에 의해 성경과 세익스피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모마저도 14 때 죽고 맙니다.그는 또 다시 고생을 하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았지만 훗날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그는 취임 연설에서 포켓에 있는 작은 성경을 꺼내 보이며 “오늘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바로 이 성경 때문이며 이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라며 소감을 말했다. 그의 어머니가 심은 겨자씨가 자라 대국을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이셨던 3년간의 공생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겨자씨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되어 온 세계를 영적으로 지배하는 커다란 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입니다.

 

씨앗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가치도 그리 높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시작이라는 의미로서는 대단한 힘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시작은 곧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대수롭지 않던 작은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성장시킨다는 말입니다.

 

3. 가치의 변화입니다.

 

질이 변하면 가치는 따라서 변합니다.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들어왔던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목사는 그리 강하고 돈 많은 실력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동토인 한국에 너무도 작은 겨자씨를 생명 바쳐 심은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 겨자씨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지금 그들이 심어 놓은 겨자씨가 자란 나무에서 깃을 틀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겨자씨들이 지금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그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다고 믿었던 불교와 유교를 제치고 가장 성장한 종교가 되었으며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종합병원, 고아원, 양로원의 원조가 됨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 수, 교회 수, 총회 수를 거느린 기독교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불과 20년 전 만 해도 해외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영국, 독일, 남아공 등으로 유학을 떠났다면 이젠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 결과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100년 전 한국교회에 심겨 진 겨자씨의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비자로 이곳에 와있던지 호주에 심겨진 작은 겨자씨들입니다.

우리는 이 겨자씨의 생명과 성장의 위력을 이제 알았습니다. 다시 말하여 복음의 위력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위력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세상의 기운에 말라 죽지 말고 세상의 유혹에 젖지 말고 기어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에 뿌리내려 무럭무럭 성장하여 삶의 가치가 변화되고 소망의 생수가 흘러 넘치고 생명을 미래의 소망을 충성하게 가꾸는 이름다운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호주 이민 사회의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 귀중한 신앙의 뿌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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