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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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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Series 3 가시밭과 같은 마음

 

가시덤불은 기후가 건조하고 돌밭이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식물군입니다. 특히 특정 식물을 재배하다가 멈추고 그 밭을 돌보지 않을 때 느닷없이 돋아나 물도 비료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계절 내내 무성하게 자라 점차 그 지역을 거침없이 넓혀가는 생존력이 매우 강한 식물이기도 합니다(사 5:6 ; 잠 24:31 ; 렘 4:3).

 

예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비유하여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라면서 그런 마음에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다 할지라도 별 소용이 없음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천국과 관계 없는 가시밭과 같은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모습이란 말일까요?

 

‘가시떨기’로 번역된 ‘아칸다스’는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다’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혹은 ‘가시덤불들’을 의미하는데 그 ‘가시 위에’로 번역된 전치사 ‘에피’는 문자적으로는 ‘~위에(upon)’라는 의미이지만, 문맥상 본문에서는 ‘~가까이에’ 혹은 ‘~사이에’라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가시나무 ‘~위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 사이에’, ‘~가까이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뿌려진 씨가 가시나무 위 혹은 주변으로도 많이 뿌려진다는 사실을 강조한 듯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가시덤불 ‘위에’ 혹은 ‘주변에’ 혹은 ‘그 속에’ 떨어진 씨앗은 날카로운 가시에 걸려 땅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땅에 닿아 뿌리를 내려 자라난다 하더라도 가시덤불의 날카로운 가시에 의해 막 피어오른 새싹들은 모두 상처를 받거나 찢겨져서 얼마 못 가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문을 가로막는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가로막는 사람들

 

뭔가가 전달 될 때 그 전달 사항이 바로 전달 되지 못하면 그 소식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최고의 중요사항은 작전지시가 제때 전달 되는 타이밍입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그 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시밭 같은 사람들은 복음의 씨가 뿌려져도 그 소식이 사람의 마음 밭에 떨어지지 못하고 그 가시 위에 얹혀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씨앗들이 가시에 걸려 땅에 닿지 못하고 말라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시나무 같은 사람들은 자신도 자신이지만 결국 남을 못살게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들도 문제이지만 가시나무에 걸린 자들도 문제입니다. 가시에 결려 얹혀졌다고 바로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바로 얹혀진 자들의 시간입니다. 이 얹혀진 사람들이란 자신의 뿌리는 없이 누구에 의해서, 혹은 소속된 단체에 의해서 인생이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좌파니 우파니 혹은 중도니 하면서 당파가 나누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우파입니까 좌파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좌파 우파라뇨. 이젠 진보냐 보수냐로 물어 보셔야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뭐가 보수고 뭐가 진보냐하고 물으면 지체 없이 “보수는 한국당이고 진보는 민주당입니다.”라고 말한답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사실 뭐가 보수고 뭐가 진보인지 대한민국 사람들 90%는 잘 정의를 하지 못합니다. 막연하게 진보는 공산주의이고 보수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참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철학과 이념도 없이 국밥 한 그릇 얻어먹고 국밥 사준 사람 쫓아가는 그냥 자기 좋은대로 가다가 남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실려 가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을 얹혀가는 인생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색잡기 좋아하니깐 주색잡기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이고

자기가 도둑질하니깐 도둑질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고

반면에 자신의 것으로 남의 삶 도와주는 사람은 남도와 주다 다 망해버린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남대문을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싸우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의 인생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온 동네 소문 다 내놓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말고 할 것을 왜 그리 목숨 걸듯 눈을 뒤집고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평화를 도모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의 일에 그리 열을 올리는 줄 모르겠어요.

 

그런 열정으로 가정을 살피고, 그런 열정으로 이웃 보살피고, 그런 열정으로 국가를 위해 죽어라 기도하지는 못할망정 나는 보수네 나는 진보네 라고 떠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라 사랑하는 것 본 적이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 후원을 했겠어요? 국가를 위해 헌신을 했겠어요? 그런 사람들 하다 못해 가정도 못 보살피는 사람들이 거의 90%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권 안 바뀌고 몇 해 지나가면 진보라는 지금의 정권이 보수가 되고 야당인 지금의 보수가 결국 나중에는 진보가 되는 것입니다. 정치이념이 이렇게 구렁이 담넘어 가듯, 카멜레온이 환경에 맞게 채색을 바꾸듯 모두는 환경에 맞게 변하여 새 사람들과 또 연합하여 살고 우리만 시간 되면 나이 들어 죽는 거예요.

 

엉뚱하데 신경 쓰다가 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만 낭비하고 열만 올리다가 내 신세 망치면서 별 도움 안 되는 이상한 사람들 일만 신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잘 아네 모르네 성경을 잘 아네 모르네 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들을 비난하는 말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성경 한자나 제대로 본 사람 있겠습니까? 읽어 본 것 같이 말하지만 거의 안 읽었구요 읽었더라도 소경 문고리 잡듯 그 뜻을 거의 모르고 읽는 것이지요.

 

불후의 명작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그너는 성경의 허구를 밝히고야 말겠다고 눈에 불을 키고 성경을 읽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감격을 못 이겨 결국 불후의 명작 벤허를 만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건 할 말이 없지만 읽어보지도 못하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란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얹혀진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얹혀사는 인생들을 만드는 것이 땅과 씨의 만남을 가로막는 바로 가시밭 같은 마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봤댔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 찢어 놓는 사람들

 

공교롭게도 그 가시덤불 사이에도 공간이 있어 수없이 많은 가시에 걸리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용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는 씨앗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명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싹이 나서 조금만 자라면 날카로운 가시에 잎과 줄기가 모두 찢기기 때문입니다. 찢어진 식물은 상처를 통해 줄기 내 수분이 말라 어떤 방법으로도 살 수가 없습니다. 결국 뿌리를 내린다 해도 성장을 할 수가 없어 의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느냐 하는 데서 그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누가 얼마만큼 사람을 죽이느냐가 대세입니다. 여러분이 즐기는 오락은 어떻습니까? 누가 사람을 많이 살리느냐입니까? 누가 사람을 얼마만큼 많이 죽이느냐입니까? 이웃을 죽여야 사는 세상, 이웃을 주눅들게 해야 하는 세상, 이웃이 없어야 내가 판치는 세상을 추구하며 사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갈기갈기 찢어놔야 성에 차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각 가정의 아이들의 자세를 가만히 들여 다 보십시오. 얌전하고 내성적이고 지극히 차분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강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야성적입니다. 자신을 감추고 내면의 폭탄을 숨기는 능력들이 점차 발달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가히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든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바라보는 자식의 모습은 빙산 일각입니다. 오락으로 이미 그런 길을 가본 부모들은 오락에 미쳐가는 자식을 바라보면 진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심정이라고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찢고 부모는 그 자식의 감정을 찢는 것입니다. 부부지간, 형제지간, 사제지간 이웃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고 성도와 목사 간에도 서로 아플 만큼, 못 견딜 만큼 찢고 찢기는 세대가 바로 이 세대입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바로 내 자신이 이미 가시나무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움과 시원함과 아름다움을 주는 나무가 아닌 갈갈이 찢어 놓는 가시나무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 주변은 전부 자신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사람들투성이인 것 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자신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귀신처럼 같이 죽는 것입니다.

 

3. 생명과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들

 

자신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들도 귀중히 여기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명, 자신의 가족, 자신의 이웃,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극단 이기주의자라고 합니다. 이 이기주의라는 것은 무관심의 대명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나 때문에 아내도 존재하고, 나 때문에 자식도 존재하는 것이고, 나 때문에 사회도, 교회도, 존재하고 내가 필요하니까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순간 쓰레기처럼 버려질 존재들입니다. 내가 필요로 할 때만 가치를 부여하는 자들을 이기주의자라고 합니다.

 

소설 스쿠루우지에 나오는 구두쇠 영감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까지도 척 하면 다 압니다. 아무리 아닌 것 같이 포장을 하고 위선을 떨어도 위선은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이기주의자나 위선자들은 아주 빨리 이웃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의 눈치가 굉장합니다. 한가지 모르는 것은 자신도 모든 것을 다 파악 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까이할 리 없지요. 그런 사람은 없는 것이 더 좋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 맘에 천국의 평화가 존재할 리 만무하구요 나아가 그가 속한 모든 공동체 즉 가족이나 단체나 동호회나 심지어 교회까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잎과 열매가 없는 가시가 돋은 가지만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를 말합니다. 어느 생명체도 기대어 살 만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나무입니다.

 

이는 사람으로 말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회에 아무 영향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 혼자 잘난 사람, 혼자밖에 모르는 사람, 문밖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 더 나아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좀 낫습니다.

 

남을 해하고, 비방하고, 험담하고, 누명을 씌우고, 욕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은 더 심한 가시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남이 못생겼으면 못생겼다고 뭐라 하고 잘생겼으면 잘생겼다고 뭐라 하고 돈이 많으면 많다고 뭐라 하고 없으면 없다고 뭐라 하고, 자신과 하나도 연관도 없는 일에 죽자사자 욕을 해대고 삽니다. 왜 그러고 사는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인은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르죠. 본인은 영육 간에 굉장히 외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게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 이 가시나무 비유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연관하여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이 어떤 곳이냐가 아니라 천국은 어떤 사람이 주인이냐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남의 삶 가로막는 사람, 남의 심정 찢어 놓는 사람,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

 

그렇게 살면 본인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도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사람 절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살면 분명히 망한다고 지엄하게 경고합니다.

 

나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길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 때문에 성도의 교제가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내 삶 때문에 이웃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앞서 말한 내 삶에 세 가지 가시를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천국의 풍요와 충만함이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곳에 함께 넘쳐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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