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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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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현대 교회는 여성 신학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과거의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 비해 열등적이고 종속적이며 구속적이고 제한적인 여성의 역할이 아닌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대해서 성경적 가르침의 핵심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성경 곳곳에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발언에 대해 정확한 해석이 이루어져 여성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작업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성 신학으로 인하여 묻혀졌던 여성의 리더십이 새롭게 평가받고 그 리더십이 사회의 영역뿐만이 아닌 교회의 영역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착되려면 어떻게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야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특히 인간을 남성, 여성으로 나누게 될 때 발생되는 성 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 완전하기 때문에 남성이나 여성은 이성이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은 남성만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도, 여성의 독자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여성 편향적인 사회의 모습도 아닙니다. 따라서 참다운 여성의 리더십을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전향적인 협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고, 여성 차별적으로 오해되었던 남자와 여자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엇인가를 고찰하고자 결론적으로 잠언을 통해 보여주는 여성 리더십의 모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대한 신학적 근거

 

1) 창세기 1장에서의 인간 창조의 원리에서 남자와 여자는 몸을 이루어야 비로소 인간으로서 받은 바 역할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부득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부족한 상태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 유한적인 모습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였다고 말합니다. '흙'은 유용하고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영원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이 영원하지 못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땅에 종속적인 모습이다.

흙으로 창조된 인간은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흙과 밀접한 연관성은 결국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하나님께 의존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지으신 후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야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흙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내면의 힘인 하나님의 생기는 인간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뜻으로부터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천지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전가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부족함, 즉 남성의 독립성은 결코 유익하지 못함을 창조의 사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흙이 아닌 남성의 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남녀 중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도, 남성의 뼈로 만들어진 여성도 소중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이라는 과정에 발발한 여자에게 부과된 심판은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받을 고통과 아내로서 받을 고통인데 먼저 어머니로서 겪을 고통은 임신과 출산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본래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문제는 그 고통이 커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연스런 고통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증가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내로서 겪을 고통은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관계가 '돕는 배필'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불평등한 관계로 바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교회가 근래까지도 여전히 자행해 왔던 여성차별의 근거가 되곤 했지만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타락하여 불러일으킨 부작용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타락 이전의 평등 관계가 타락 후 지배의 구조로 변질될 것이라는 상황 예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하였습니다.

 

2) 남자와 여자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

 

①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전11:1-16)

 

당시 머리에 천을 두르지 않은 여성들은 미혼여성이거나 과부이거나 매춘부였습니다. 결혼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렸습니다. 유부녀임을 나타내고 뭇 남성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미리 밝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혼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자신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매춘부의 인상을 풍기는 행위였고, 뭇 남성들의 시선을 모으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남편을 욕되게 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 한 여자가 머리에 천을 두르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11:11-12).라고 전하면서 남녀의 중요성을 동일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②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35)

고린도전서 14장 34절도 오해를 많이 받고 있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활동을 제한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는 여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가진 여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지식을 사랑하며 묻고 답하기를 즐기는데 그만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이어 쉽게 불륜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행이 교회에까지 이어져 교회 안에서도 유부녀들이 당당하게 외간남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으며 교제를 나누는 모습들이 지극히 위험스럽고 부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런 것들은 집에가서 남편들에게 묻고 그들이 말에 복종하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어엿이 남편이 있는 아내들이 남편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은 자신의 남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단정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운 것이라"(고전14:35)고 말을 한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바울이 교회 안에서 여인들의 모든 활동을 금지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③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딤전2:8-15)

 

고린도 교회에 생활의 부적절한 요소가 있었다면 에베소교회는 거짓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많았었습니다. 이런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교리를 강하게 전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젊고 다소 부유한 과부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5:11-13). 영지주의 영향 아래 있는 이들은 여성들이 주도적이었으며 이들은 물불을 안 가리고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였습니다(12절, 5:13, 딤후 3:6참조).

 

그러면서 그들은 제한적인 성적 역할을 극복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견해를 제시하며 당시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장을 과감하게 했습니다. 부부간의 관계와 혼인과 자녀출산 등을 복음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고까지 강하게 주장했습니다(4:3).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여자는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했던 것이지 모든 여성을 비하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 절대 아닌 것 입니다.

 

2. 잠언서의 '지혜'를 통해서 본 여성 리더십

 

잠언서는 마지막 장에서 두 여인을 소개함으로써 현숙한 여성으로서의 삶, 즉 여성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한 사람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이고(31:1-9), 다른 한 사람은 '현숙한 여인'입니다(31:10-31).

 

이 두 여인에게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여성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지혜의 리더십을 보게 됩니다. 이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인까요?

 

첫째, 주도적인 리더십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아들을 깊은 사랑을 담았지만 상당히 권위 있는 모습으로 아들을 훈계합니다. 이 훈계의 말은 마치 권위 있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습니다(잠1:20-33 참조). 또한 두 번째 여인인 현숙한 여인은 남편을 비롯하여 가족 구성원을 주도하고 가정을 책임집니다. 손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사 경영능력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가 아닌 대상 즉 가족, 남편, 아들, 백성이라는 존재 속에서 나타난 주도적인 행동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 주도적인 인물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 주도적인 힘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 및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경제적, 생활적, 사회적 능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리더십은 옛날 말입니다.

 

둘째,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리더십

왕의 어머니는 왕이란 자고로 힘이 없어 '말 못 하는 자'들을 변호하는 것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위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에 있으므로 왕이 한시라도 개인적인 만족과 즐거움을 얻고자 여자와 술에 빠지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현숙한 여인이 보여주는 삶은 개인적 차원과 자기 가족 중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리더십의 범위가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는 공동체적인 지혜와 인애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활동영역은 자기 집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집 밖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까지 미칩니다(20절). 이러한 현숙한 여인의 삶을 통해 남편도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며(23절), 결국 자신도 성문에서 칭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31절).

 

셋째, 경외의 리더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지혜의 삶의 시작이고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신뢰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과 신뢰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와 사회를 만사형통의 대로로 걷게 하는 것입니다. 리더는 100% 확신에 운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믿음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내 눈으로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분명하고 확실한 리더십은 없습니다.

 

나가는 말

리더십의 관건은 '선한 영향력'을 얼마나 끼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일방적인 강요나 독주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타인과 올바른 관계에서 리더십은 정상화되고 극대화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 리더십은 필요하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 유교에서 가르쳐 퍼트린 망국적인 남존여비의 사상이 더 이상 교회 안에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자와 여자가 한 뜻으로 화합하여 창조의 질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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