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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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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습관입니다.

사도행전3:1-10

2016년 9월 4일 골드코스트 가까운교회 주일 낮

 

습관이란 주위환경과 자극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반복됨으로써 같은 자극만 제공되면 반사적으로 보이게 되는 상태를 습관이라고 합니다. 이 습관 형성은 어린 시절이 행동 습관형성 시기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가장 중요합니다.

 

습관은 지극히 정형적이며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이라서 자유로이 변화하는 의도적(意圖的) 반응과 구별이 됩니다. 또한 습관은 습득(習得)된 결과라는 점에서 선천적 반응과 구별이 됩니다. 그래서 습관형성은 조기(早期)에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생활습관, 사회적인 습관은 부모의 좋은 모범으로 형성됩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좋은 습관보다는 나쁜 습관이 더 많다는 것이 정론입니다. 또한 좋은 습관은 개인을 성장 시키지만 나쁜 습관은 자신은 물론 타인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까지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 자신의 나쁜 습관 하나를 고치면 이웃은 물론 수많은 이웃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3무리가 나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무리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무언가 시간을 정해 놓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면 다릅니다. 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게 됩니다. 기도나 봉사나 헌신이나 성경공부 같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들도 이런 습관적인 자세가 필요 합니다. 이들은 전도를 위해 복음을 증거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오후 3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해 놓고 습관적으로 기도했었던 모양입니다.

 

습관은 매너리즘을 경험 할 수 있게 합니다. 늘 하는 것은 신비롭지 않습니다. 언제나 보는 것은 감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때론 습관은 기적을 낳기도 합니다. 바로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 습관은 불구자에게 놀라운 기적의 통로가 됩니다.

 

당시 누구나 거부할 수 있었던 거북한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동전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으니 달라고 애원하는 불구자에게

네가 원해야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너를 걷고 달리게 할 수 있는 그래서 스스로 벌어 먹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습관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한 거룩한 습관을 들이라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오리를 가자하면 10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주고, 한쪽 뺨을 맞으면 한쪽 뺨도 마져 내어주라고 합니다. 그것에 반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습관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무리는 이상하게도 나면서부터 못 걷는 불구자를 메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습관에 따라 이 못 걷는 자를 위해 성전의 한쪽 작은 문에 내려놓았는데 이름이 미문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 아마도 무척 아름다운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로는 “Gate of Temple which is called Beautiful"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왜 이 아름다운 문에 이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를 옮겨다 놓았을까요?

 

아마도 수많은 성도들이 오고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알아서 구걸하여 먹고 살라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고 또 다른 이유는 이 불구를 통해 부당 이득을 취하려는 악한 무리가 구걸하여 모은 돈을 부당하게 착취하기 위한 불건전한 사업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유추하는 이유는 사도들이 이 불구를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왜 쉽게 기도해 낫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진작 그렇게 못 했는가 입니다. 아마도 불구자를 메고 다니는 그들의 눈치를 봐야했으므로 쉽게 접근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왜 건물은 아름답게 만들면서 사람의 삶은 추하게 만들까요?

유대인들은 성전은 아름답게 꾸미면서 자신들의 삶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발견 할 수 없는 가장 추한 모습이라는 모순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신들이 들쳐 메고 있는 불구자를 향한 모습 속에서 100% 분명한 메세지는 자신들은 불구자에게 그 무엇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줄 수 있는 자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습관적 관념입니다.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시간을 통해 역사하시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Here and Now(지금 여기서)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한 행동에 있어서 “나중”이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바로 구걸하는 불구자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성전 미문 자리에 옮겨져 구걸을 했습니다. 불구자에게 있어서 그 구걸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바라보는 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습관은 이렇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뭐가 부끄럽고 뭐가 수치스러운지 습관은 판단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금이나 은이나 돈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장애인은 이 성전 안에 있는 유대인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레위인이나 서기관들이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한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돈도 건강도 모두 그들이 아닌, 성전도 아닌,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그것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돌아가신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돈이면 행복해 진다는 습관적 고질적 개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져야 할 습관을 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 하나만으로도 만족하시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한번 두 번이 아닌 좋은 습관은 많이 갖도록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는 습관” “말씀 보는 습관” “헌신과 봉사의 습관” 등등 이런 거룩한 습관에 관심을 갖는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또한 버리셔야 할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일은 못 하시는 일이야, 기도한다고 성경 본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야”라는 불신의 습관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시험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인간 따위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는 푸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세말한 분이십니다.

 

장애인이 구하던 것은 애초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없었습니다.

절망스런 일입니다.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이런 소용없는 사람들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원하지 않는 다고 해서 안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원칙 없이 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모두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말 모든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가정이 변화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십니까?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모가 나의 남편이 변하는 것이 불가능 하리라 보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는 불신의 습관입니다.

이 불신의 늪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없이 우리는 할 수 없고, 우리 없이 그분은 하시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세 부류의 습관을 가진 무리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자들을 데려다 놓는 무리

불행한 무리

불행한 자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하는 무리

 

여러분은 어떤 습관을 갖은 자들이 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습관에 길들여져 있습니까?

 

깊이 성찰하는 한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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