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신앙과 생활

조회 수 6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팔복강해 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태복음5장 1-12

 

의 :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정의와 공의

바리새인의 의 : 자기의 의

                    율법적인 의 - 자기 공로의 의 / 자기의 신분과 업적의 의

 

주리다 :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죽여야 하는 심한 갈등과 번민

 

시편42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 왕이 왕궁에서 쫓겨 다니면서 쓴 시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때 다윗에게 제일 갈급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루 빨리 왕권을 회복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 한순간에 떨어진 다윗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 이렇게 왕권을 빼앗겼다는 것은 물질적으로도 아주 궁핍한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피난을 다니면서 왕궁에 있는 우물물을 먹고 싶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목말라 하고 갈급해하는 것은 그런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다윗은 그런 정치적인 일들에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다윗은 먹고 사는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윗도 분명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왕권의 회복이나, 경제적인 문제나, 명예에 관한 문제에 갈급해하고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의 인생의 최대의 위기의 순간에 정말 그가 목말라고 갈급했던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현대적으로 보면 예배의 회복입니다.

 

시편42편에 보면 지금 다윗이 그리워하는 것은 화려한 왕궁의 식탁이나 안락한 잠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신하들을 거느리고 호령하던 왕궁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제일 갈급했던 것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라고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면서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요단땅과 헤르몬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땅입니다.

거기서 예루살렘에서 드렸던 예배를 그리워하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예배를 위해 예루살렘을 갈망했을 뿐인데 아직도 예루살렘은 멀기만 한데 하나님은 이미 그런 목마름을 기억하고 계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소가 아닌 그 목마른 심령을 감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일에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목말라 하는 것은 그 예배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물이 없으면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사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갈급히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갈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내 기억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나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내려주지 아니하시면 저는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넘어진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 손을 잡에 주세요.

 

누구든지 예배를 취미 생활이나 교양생활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의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주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요즘 사람들이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조차도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영혼의 만족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과 실패의 삶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패와 고난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아닙니다.

네 의지대로 뜻대로 네 맘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이시며 그 속에서 지금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난과 실패의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다윗과 같은 고난이 있습니까? 실패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을 가지게 하기 위한 수단임을 믿으시기 바라니다.

 

물질에 목마름, 자녀에 대한 목마름, 부부간에 목마름, 신앙에 목마름....

이 모든 일들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길급 함처럼 하나님에 대한 길급함 만이 그 갈증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예배의 목마름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면서 오랜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또 다윗주위에 사람들을 통해서 불신앙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쫓겨 다니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게 내어버려두시느냐

더 이상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

 

다윗은 종일 이런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양식이 되었고

그 말들이 자신의 뼈를 찌르는 칼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부적인 핍박과 박해보다 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낙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이렇게 내 삶에는 끊임없는 고난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라고 하는 불안한 마음이 다윗의 마음가운데 생겨났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영적 침체, 또는 신앙의 침체라고 합니다.

한동안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한순간에 이런 신앙의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 이런 시간이 오면 즉시 예배가 싫어집니다.

 모든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 다 부질 없는 짓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 여지 것 해 왔던 모든 노력들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다윗을 봅시다.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영혼을 향해서 강하게 꾸짖습니다.

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가?

 너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 오직 하나님의 얼굴의 도우심만을 바라라

 

라고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신앙을 꾸짖어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그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 때문이요 자신의 불신앙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에겐 즉시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하며 신앙의 반전을 가져 옵니다.

 

우리 신앙이 침체 되어 있을 때 그때 오히려 하나님께 크게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진지하게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우리에게도 제일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경제의 위가가 아니라 예배의 위기고, 신앙의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제일 갈급하게 회복해야할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회복이 아니라 예배의 회복이고, 신앙의 회복입니다.

 

우리도 지금 예배를 드리지만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안 공포 두려움 낙심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 그 자신입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단순히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그 자신만을 갈급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갈급해야할 또 다른 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아모스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판의 날이 이를 것이다. 그 심판의 날이란 먹을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주림이고, 갈함이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암8:11-12).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아픔들이 있습니다.

 

 어떨 때는 육신적인 양식을 빼앗아 가실 때가 있습니다.

 또 육신의 몸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 또 명예를 가져가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이 있다고 하십니다.

 

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우리에게 육신적인 어려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이런 육신적인 어려움과 위기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말씀이냐? 배가 부른 후에 말씀을 보겠다는 사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이 위기입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입니다.

하나님백성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

이것이 가장 큰 재앙이고 위기이고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재앙을 보이시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두어 가는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말씀이 없는 400년 동안 경제적 암흑기, 영적암흑기, 정치적인 암흑기를 격고도 정신을 못 차리자 1,700년 동안 영토와 나라와 민족 없이 떠돌이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도 나라사랑이 남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밥 먹여 주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수가 밥 먹여 줍니다.

 

그러나 또한 지금 당장 예수님이 내게 밥 먹여 주지 아니하시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양식을 더 간절히 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