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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6.06.11 12:13

누룩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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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이 주는 교훈

마13:33 / 눅 13:20-21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보다는 내세라는 다가 올 나라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 성경은 여러 가지 비유로 천국에 대한 속성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이 누룩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 설교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미 들은 바 있는 겨자씨 비유는 그 자체 하나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는 것이라면

이 누룩은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 환경을 모두 변화시키되 아주 작은 소량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 효과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힘없고 능력 없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찌라도 많은 세속인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다가 올 미래의 나라 천국이라는 것을 강도 높게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실질적인 주제가 교회나 성도들이라는 해석은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위력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복음의 위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룩의 정체는 주님이 이 땅에 심으신 복음의 능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룩의 성질을 보면

 

1. 주변 환경을 모조리 변화시켜버린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간에 누룩은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것의 모습과 부피를 변 화시켜 나아갑니다.

매우 공격적이며 파괴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모습과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 쌍합니다.

 

2.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아주 조그마한 누룩이라도 일단 이 누룩에 의해 공격을 받으면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주변 환경을 변화 시켜 나아갑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주고자 하는 말씀은 두 가지로 압축 할 수 있는데

 

첫째가 우리가 누룩과 같은 복음을 세상에 뿌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둘째가 우리가 누룩의 역할도 감당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복음의 누룩이 주는 삶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는 물론 수많은 이웃을 성장과 변화로 몰고 갈 수 있는 거룩한 누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이 말씀하시는 누룩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복음적이라야 한다.

 

아무리 구제가 좋고 교육이 좋고 헌신과 희생이 좋아도 복음적이지 못하면 그런 누룩은 사회 사업에 불과합니다.


복음적이라는 의미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새로운 생명을 받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주님이 주신 신비롭고 황홀하고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면 교만과 이기심이 찾아옵니다.

남의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면 빼앗아야하는 죄를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적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거저 받은 선물이며 한번 받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마치 자녀를 낳은 부모가 자녀가 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준비하여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누리게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부모가 준비하여 주기 때문에 받아 누리는 절대 만족인 것입니다.

이 절대적인 자녀의 권세가 바로 복음적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자신을 만족하게 할 것입니까?

도대체 만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복음적인 삶의 첫 걸음입니다.

 

2. 생산적이라야 한다.

 

누룩은 자체뿐만이 아니라 이웃까지도 동반 성장 시킵니다.

성장이란 질량의 변화입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로 변하는 것이 성장입니다.

누룩은 결코 자신 하나로 멈춰져 있지 않습니다.

 

가끔 인터넷이나 기독 방송에 젖어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인터넷 문화는 성장을 가로 막는다는 것입니다.

이 성장은 만남에 있고 관계에 있는데 온라인은 그것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홀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는 것은 이론적일 뿐 실질적으론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장은 관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 누룩은 어떤 관계를 맺어 가느냐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생산적인 누룩의 경험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직장이나 가정생활 속에서, 성도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때문에 이웃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행복해 하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3. 효과적이라야 한다.

 

가정에서 어른들이 자녀들 앞에서 흔히 하는 실수로

 

자신들은 먹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먹지 말라고 한다든지

자신들은 안자고 있으면서 자녀들에게는 자라고 한다든지

자신들은 놀면서 자녀들에게는 공부하라고 한다든지

자신들은 온통 어지럽게 늘어놓으면서 자녀들에게는 깨끗이 치우라고 한다든지

자신들은 날마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형제끼리는 화목하라고 한다든지

 

그러한 실수를 하며 산다면 그 가정의 자녀들의 삶 속에 어떤 누룩이 들어가겠습니까?

아마도 불만과 불평, 원망과 조소의 누룩이 들어가

부모의 공정성과 공의성을 의심하고 삐뚫어 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 세상을 향한 바른 모습이 없이 말로만 전도하려하고 형식적인 전도만 일삼는 다면 과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런 누룩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말고 교회를 나아가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부정적인 결심의 누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1절에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 6-8절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져나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나쁜 영향이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고와 한 집단의 잘못 된 행동은 전 사회를 잘못된 구조로 바꾸어 놓고 곧 외식과 위선과 형식에 얽매이게 만들어 놓고 결국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부모의 잘못 된 의식과 생각과 나쁜 삶의 습관들이 누룩이 되어 자녀들에게 들어간다면

그것을 바라보며 자라는 그 자녀들의 미래는 뻔한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의 조상은 신앙이 좋기로 유명한 청교도 들입니다.

이 청교도 신앙은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본받을 신앙의 모습으로 마치 교과서와 같습니다.

그 청교도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적의 대명사인 바이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적들이 늘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늘 이렇게 해적질이나 하면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더럽지만 자녀들은 깨끗한 삶을 살게 해 주고 깊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소망을 성취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방도를 찾았는데 바로 크리스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이라면 자신들의 자녀들을 잘 교육 시켜 줄 것이란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인들은 탐심과 사치와 음욕으로 가득 찼지만 바로 이 크리스천 여인들은 믿을 수 있다고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적들은 각 처에서 강제로 크리스천 여인들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참 억울하게 너무나도 분통터지게 강제로 해적의 아내들이 된 그녀들은 해적들이 원하는 대로 해적들이 계획했던 대로 자녀들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남자들이 해적질을 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면 그녀들은 즉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쳤으며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비록 강제로 해적의 아내가 되긴 하였지만 해적의 엄마는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늘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으로 깨끗한 자들로 키우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라난 아이들이 바로 미국인의 조상이요 참된 신앙인의 표상 청교도였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실 앞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아무 힘도 없는 시시한 아녀자들의 힘이었지만 그들은 작은 누룩이었습니다.

해적에게 순결과 인생을 강탈당하며 울부짖던 저 작고 불쌍한 나약한 여인들이 엄청난 힘과 무력을 지닌 해적들을 이기고 이루어 놓은 신앙의 대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난 어떤 존재인가?

난 어떤 누룩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 가정에서 난 어떠한 누룩인가?

내 배우자에게 내 자녀에게 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누룩인가?

 

내 교회에서 나는 어떤 누룩인가?

성도들에게 맡은 사역과 직분 앞에 나는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누룩인가?

주변 이웃 사람들에게 내 직업 앞에 나는 어떠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지금 어떠한 누룩인가를 조심스럽게 반문 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내일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누룩의 모습으로 변화 해 있을 테니깐 말입니다.

 

빨리 태워 없애버려야 할 의심에 누룩 / 나태의 누룩 / 게으름의 누룩 / 핑계의 누룩 / 아첨의 누룩 / 이라면 오늘이 가지 전 바로 이 시간에 없애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누룩은 거룩한 누룩 / 세상을 정복하는 누룩 /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나라와 의를 이룩하는 참된 누룩 / 나와 너를 하나로 역어주는 화합의 누룩 / 하나다 둘이 되고 둘이 넷으로 변하는 성장하는 누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 아름다운 누룩의 사명을 다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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