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삼대 사역

by 관리자 posted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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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3대 사역

마태복음 4장 23절

 

2012년 7월 22일 가까운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오늘은 교회의 사명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은 다른 사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를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가 그의 백성들에게 왕의 삶의 패턴이 어땠는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1∼3장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준비기간을 기록한 것입니다.

4∼20장은 예수님이 이 땅위에서 하신 사역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21∼28장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 후 승천까지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냥 막 사신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단계인 사역의 준비기간에서는 아주 체계적으로 삶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사역에 나서시기 전엔 매사에 조심하셨고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4장에 들어와 마귀들에게 이끌려 각종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는 과정을 무사히 넘기신 후 첫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바로 제자 선발이었습니다.

 

제자 선발이야 말로 전도의 첫 관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가르치려 해도 배울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첫 제자들을 찾기 위해 거리로 해변으로 세관으로 친히 다니시며 모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사명을 다하시기 위한 첫 번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교육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교육이란 가르침을 말합니다.

이 교육은 가르침을 받은 자들만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결코 스스로 만들어 가르칠 수 없고 심지어 이단들도 그들의 사상에는 영향을 준 사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배움 없이 스스로 만들기는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이란 곳에서 또는 광야에서 또는 산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한명의 제자 외엔 모든 군중도 제자들도 따르던 자도 다 도망하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포커스를 두고 가르친 것이 바로 그나마 제자들이었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물론 교회는 매주 가르치고 선포하고 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일이 지나면 마치 안개 사라지듯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는 빨리 제자를 설발하고 길러내지 못하면 실패입니다.

교육의 성공을 절대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쒀서 개준다는 말이 있는데 제자 없는 교회는 마침 이단에게 빼앗길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학교만의 몫이 아닙니다.

학교는 사는 법을 이론으로 가르친다면 교회는 실천적 행동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보여 줄 숙련된 조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과연 우리교회에 세상을 행해 나아 갈 수 있는 제자가 있느냐 하는 질문은 지금도 계속 되어져야 할 아주 중대한 질문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가르친다는 것과 복음과는 어떤 관계일까요?

복음과 가르치는 교육과는 다릅니다.

 

 

복음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는 것이고

교육은 성도의 삶의 질을 보다 더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백성은 삶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는 공식이 여기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냥 막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로써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을 만 한 질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은 복음 전파와 함께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이고 그렇지 않은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치유의 사역입니다.

 

교회는 치유하는 곳 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곳을 다니시며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 병이 마음의 병이든 육신의 병이든 정신의 병이든 무조건 치유하셨습니다.

 

왜였을까요?

왜 사람들이 병을 치유하는 일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본성인 죄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한 죄인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많은 병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용서 받았다

 

이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닌 주님의 관심입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나와 연관시키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은 다릅니다.

병이 들면 일단 맘이 약해지고 인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더 새겨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내가 죽고 난 뒤의 다음 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 병든 자에게 육신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은 인생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여기 누구 병들었다가 살아나신 분계십니까?

분명 그분도 그런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대화를 평생 잊지 마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때 제일 많이 한 말이 용서 해달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한 번 더 살려주시면 한 번 더 이병을 고쳐 주시면 다시는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도 우리 주님은 다 용서 했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육신의 병을 치료하시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병을 통해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병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마다 병든 자들이 모여 치유 받고 하나님을 알고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자피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 갑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두 용서하시고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 흉악한 죄의 흔적들을 다 털어버리고 평안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조폭들이 부하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합숙훈련입니다.

연대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일명 공동체 훈련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는 개 사료를 삶아 먹입니다.

살이 찌고 덩치가 좋아 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을 위협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세 번째로는 몸에 문신을 하여 돌아 갈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몸의 문신 때문에 돌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세상에서 지은 죄를 몸에 문신처럼 새겨 영원히 지울 수 없다고 유혹하는 무리가 아직도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악령들입니다.

 

너는 안 돼

 

라고 그들은 단정 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살길이라며 추잡하고 유치한 명예와 정욕과 물욕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풍성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병든 몸을 구원을 위해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