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져 주는 전도자의 삶

by 관리자 posted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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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주는 전도자의 삶

마태복음 10:5-15

 

2011년 7월 24일 골드코스트교회 주일 낮

2012년 10월 28일 골드코스트 가까운 교회 주일 낮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교훈으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전도자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자세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바로 『거저 주어라』라는 것입니다.

이 거져 준다는 것은 매우 잘 생각하야 합니다.

 

당시 제자들이 무슨 부자라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가난했던 제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음식과 의복과 재물이 있었겠습니까?

거저 주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이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이 전해져 내려오고는 있었지만 이는 귀중한 것이라서 아무나 읽을 수 없었고 대필가들이 계속 대필을 하였지만 그 수는 아주 적었기 때문에 민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다는 그 자체가 아주 힘들었고 그 말씀을 한번 듣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 안식일이면 회당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라는 지도 모르고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란 그것 하나로 그들은 감격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는 권한도 읽을 수 있는 권한도 모두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 보니 모든 예배의 권한이 성직자들에게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말씀이 전부였기 때문에 구약을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메이게 되었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온통 의식과 전통과 관습에 메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신앙생활이 신앙의 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국가의 법으로 대치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성직자들은 성도들 위에 강하게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은 영적권위와 사회적 권세가 하늘을 찌르듯 높아졌고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로부터 반기독교적인 인간이하의 멸시와 굴욕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직자들의 권세가 높아지다 보니 서민들의 입장에선 그 성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었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선 뭔가를 해야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직자 매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 있는 사람들은 성직자에게 돈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축복을 바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당시의 교회의 모습이었고 구약 율법 공동체의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훈련을 받던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너희는 거져 주라”고 당부하신 이유이며 뜻입니다.

 

이제 그 뜻을 아시겠죠?

 

돈을 거져 주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재산을 거져 주라하신 것도 아니고 음식을 거져 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게 세상 구석구석에 가서 전하되 기존의 성직자들처럼 돈 받지 말고 무료로 전해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을 깨끗하게 고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사랑이며 자비입니다.

 

이것을 나만 간직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져 나눠 주란 말씀 앞에 우리가 지금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하나님 앞에 부름을 입은 우리 전도자들은 어떤 자들이 되어야 할까요?

 

1. 우선 전도자는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교훈인데 예수님께서는 전도자의 중요한 기본적인 자세를 지적하며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자들에게 『거저 주라』고 하심은 전도자는 먼저 타인의 삶에 본이 되어야 하는데 각박한 세상에서 성도의 이러한 삶은 진짜 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식당하면 세상에 돈 없는 사람들한텐 다 공짜로 밥을 줄텐데....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선교관을 운영해보니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단돈 5쎈트도 너무 큰돈이라 1,2불에 덜덜 떨리는 겁니다.

한번은 4불을 받아야 할 손님을 그만 3불을 받은 겁니다. 1불을 적게 받았는데 하루 종일 속이 쓰린 겁니다. 아 멍청하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1불 때문에 자책을 하느라 그날 난 밥도 안 먹었습니다.

이런 내가 식당을 경영하게 되면 돈 없는 사람들 밥을 공짜로 주겠습니까?

정말 모르고 한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꽃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잘사는 법에 대하여 교훈하는 말씀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선 그 많은 가르침들을 통하여 『거저 주라』고 계속하여 말씀하셨으며,

이 말씀을 받은 초대 교회는 바로 이 거저 주는 일에 힘씀으로 복음전파와 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것 땜에 교회와 성도들의 개인의 삶이 불처럼 일어났고 부흥 했습니다.

 

2. 주되 대가 없이 거저 주어야 합니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은행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8절의 『거저』라는 말은 헬라어로 「도레이안」이라는 말로서 「선물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는 값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져 준다는 뜻은 선물로 주어라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전도자가 거저 주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신 까닭은

전도를 사심을 갖고 하지 말라는 것으로써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들의 태도와 본질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부자를 전도하면 헌금이 많이 나오니깐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가난한 자들은 헌금은커녕 구제비가 나가야 하니깐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전도는 내가 뭔가를 얻고자 함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고자 함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가 모태에서 빈 몸으로 나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며,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며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거저 받은 모든 것을 이웃을 전도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자를 데려다가 가난한 자를 도울 생각하지 말고 가난한 우리의 적은 돈을 모아 많은 사람 구제하여 이곳에서 영적 부자가 나오는 기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의 차이점을 아실 것입니다.

사해는 오직 받아들이기만 할 뿐 아무 곳으로도 내어 놓지를 않습니다. 그 결과 그곳은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받아들이는 만큼 다시 내어놓는 갈릴리는 다릅니다.

그 곳은 풍부한 어족들이 살며 그 척박한 이스라엘 광야의 그야말로 젖줄이 되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곳과 거저 주는 곳의 차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절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는 것이 분명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원리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테텔레스타이 였는데 이는 한국어 번역으로는 “다 이루었다”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헬라어로 직역을 하면 “다 내가 샀으므로 내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주시므로 만물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원리입니다.

 

오늘 날 교회엔 먹을 것을 달라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 주변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턱없이 부족한 너무 형편없는 재정과 또한 개인들의 생활력도 부족하여 그럴 의욕조차 없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4장 16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

 

가난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부자나 행할 수 있는 일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 뒤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또 있습니다.

 

결재는 내가 한다.

선지불은 네가 해라

 

예수님께서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5000명이 넘는 그 무리들을 바라보시며 아무 것도 갖은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

 

그것은 맘만 먹으면 그 먹을 것은 “내가 주겠다”라는 주님의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제자들이 돈이 있어서 그 돈을 보시고 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돈을 내어 놓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다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명령을 우리 각자와 이 교회 성도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읍시다.

여러분에게 돈이 있어서 전도하라는 것도 이 교회를 맡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맘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교회 회복과 우리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이루며 또한 우리 각자의 삶에서 거저 주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축복으로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