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번영

by 관리자 posted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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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번영

창 26장 1-5, 12-22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흉년은 수시로 다가온다.

단지 다른 점은 흉년을 맞이했을 때의 자세일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이들에게는 흉년이 있어도 내게는 흉년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그것은 바른 기도가 아니다.

 

남들이 다 맞이하는 흉년이 내게도 온다 해도 그 흉년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그리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그 기도가 부끄럽지 않기 위해 풍년에 거둔 곡식을 잘 보관하였다가 흉년에 쓸 수 있는 지혜도 길러야 한다.

 

공부도 안하면서 시험은 100점 맞게 해 달라던가

운동도 안하고 먹기만 하여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달라던가

흥청망청 물불을 안 가리고 돈을 물쓰 듯 써 놓고는 돈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다면

그건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한 감사는 뿌리지 않은 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애쓴 보람이 결실로 나

타날 때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한 기도의 결신도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기도만 하면 모든지 공짜로 얻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노력도 안하고 날마다 울고불고 교회에 앉아 기도만 한다.

그 결과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고

가정은 지옥같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부부지간에 금이가고

가족간에 잘못 된 관계로 말미암아 늘 간등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 된 신앙이며 지금도 그런 사행심 신앙을 심어주는 교단이 존재하고 있다.

 

기도만 하면 만사가 변한다고 한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거 진짜로 본 적있는가?

그러나 기도만 하면 만사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해야 만사가 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지 못했다.

자식 하나 받았을 뿐 부자도 왕도 되지 못했다.

그럼 복 받은 자가 아닌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아브라함에게 늘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이삭에게서도 그 섬세하고 조직적이고 빈틈없는 구속의 은혜와 계획은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언약의 약속을 이삭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함을 다시 한번 더 상기 시키시고 난 후 이삭이 거할 땅을 지시하신다.

 

그러나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의 내용 즉 큰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만들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은 아브라함이 죽을 때 까지 사실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죽어 장사지낸 곳도 아내 사라가 장사된 작은 막벨라 굴 하나였다.(창25:9-11)

그런데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을 또 이삭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슨 이유와 근거에서며 그것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사실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한 복은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복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죽은 것은 하나도 이상 할 게 없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의 믿음과 구속의 선물을 전달해 주고 그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조상의 역할 만을 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의 구속을 믿고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지닌 자에게 하나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축복을 해 주신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많은 축복을 받은 자 중 하나이다.

 

우선 먼저 아브라함에서부터 내려온 축복이 이삭에게까지 미치는 이유는

 

1. 아브라함이 항상 하나님의 말에 순종하였다

 

일반적인 진리이다.

자식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 늘 불효하기 일 수이고

학생들은 선생의 말씀에 청종해야 하나 늘 딴 짓하기 일 수이고

성도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야 하나 늘 곁길로 새기 마련이다.

 

효자가 무엇인가?

먹을 것을 많이 드리고 좋은 옷 많이 사다드리는 것이 아니라 남들 부모 말씀 다 무 시하고 듣지 아니하여도 늘 순종하는 사람(100명이면 1명)

 

모범생이 무엇인가?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든지 청종하고 이해하려는 사람(100명이면 1명)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인가?

남들 다 제 뜻대로 살고 세상 풍조로 살아도 그러한 것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에 의지하고 사는 것(100명이면 1명)

 

사실 아주 쉬운 것 같으나 100명이면 1명도 나오지 않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그 말씀 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바로 100명 중 1명인 그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제 그 열매를 이삭이 받아 누리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의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코 복이라는 것이 당대에서 뿐이 아닌 후대에까지 미치기도 하고

어쩌면 당대에서는 해당도 되지 아니하는 축복이 결국은 자손에게 미칠 수 있는 축복 일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의 순종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간주된다.

 

 

 

2.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킴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법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기뻐 지킬 때 그것을 즐거워하신 다. 가끔씩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기발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자기만족일 뿐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싫어 할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대가로 많은 고생과 시련을 격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부활의 신앙과 구속의 신앙은 절대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 생각은 그 무엇보다 온 인류를 구속시킬 이 구원에 대한 계획에 한 치의 의심 없이 동참하는 아브라함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자녀였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원리를 따르고 그 법도 를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살았다.

 

이것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변화한 모습이었다.

세상의 아버지에서 믿음의 아버지로 바뀐 것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 노력을 기울인다는 그 자체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믿음이다.

 

이러한 이삭에게 아버지 때에도 잠시 누렸었던 재물의 복을 주셨다. 도대체 얼마나 복을 주셨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질투를 심하게 하여 이삭이 마시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막는 행패를 주변 사람들이 저질러 이삭으로 하여금 삶에 고난을 받게 한다.

 

1.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창26:12)

 

이삭은 특별한 생계의 재주를 가지지 못한 자였으므로 단순한 평범한 자였다.

그러한 자가 농사를 지었다면 큰 수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백배라는 수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간 신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고 볼 수 있다.

 

2.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노복이 심히 많으 므로(창12:13-14)

 

이것은 어떤 기업정신과 사업계획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다. 아니 사람으로서는 능 히 감당 할 수 있는 결산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 인가? 이렇게 엄청난 부귀와 성공이 바로 그 말씀인가?

당연히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만족치 않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길 이 미 작정하셨던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프리카 사냥을 다녀오는 한 배에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한 한 늙고 병든 목사가 타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한 그 배를 환영하는 수 많은 인파들의 환호에 대통령은 사냥 전리품을 높이 치켜들고 그 환호에 답하였다. 하지만 그 목사는 그러한 모습을 보며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항구 플랫폼으로 쓸쓸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아직 넌 고향에 도착하지 않았다. 평생을 지고 온 너의 십자가를 내려놓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라는 음성이 들린 것이 다. 그렇다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복의 정체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곳에서 반드시 실현 될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자들일 것이다.

 

3.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창26:15-25)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모든 종들에게는 방해와 장애의 세력들이 많이 등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방해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 의 사심을 그들이 알고 스스로 화친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곧 시련은 하나님의 승 리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 속에서는 이삭의 번영과 풍요는 소개 되었으나 감사의 모습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감사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삭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아 기르고 살며 평생을 순탄하게 그리고 아무런 시련이 없이 살아간다.

 

이 이삭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혼란스럽지 않는 자는 성경에 그리 많지가 않다.

 

남들처럼 아내를 여럿 거느렸다든지

가정 문제가 복잡했다든지

하나님께 대적하여 스스로 무덤을 판다든지

 

이삭에게는 그런 스켄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게 감사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 속엔 반드시 번영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