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냐 고독이냐

by 관리자 posted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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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냐 고독이냐

전도서 4장 9절-12절

 

오늘은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사람의 관계는 너무 복잡해서 한 번의 설교로 논한 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표적인 문제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바로 인간관계를 통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갈등과

인간의 고독의 문제를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갈등은 무엇일까요?

 

상대의 선택이나 행동이나 말이 나에게 준 영향입니다.

혼자서 갈등하는 법은 없습니다.

둘이기에 갈등하는 것이고 셋이기에 편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에 앞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도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있기에 그러는 거지 나 혼자라면 갈등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갈등은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의 연합에서 오는 것이고

더불어 사는 연합된 사회에서는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빈번한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등도 삶의 한 수단 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고독은 다릅니다.

 

고독은 혼자이기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은 갈등이 없습니다.

갈등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혼자 있으면 모든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사를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맘에 차지 않는 사람들 속에 살지 않아 근사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은 언제나 고독합니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즐거울까요?

자신의 삶에서 즐길 것이 없고 즐거운 것이 없단 말인데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과연 어떤 것이 나을까요?

 

갈등을 겪으며 여럿이 함께 살아야 할 까요

편안히 혼자 살면서 고독하게 살아야 할 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성경을 찾았습니다.

전도서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성경은 단호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그 결과로 좋은 상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을 받는 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여자를 만드시는데 그 이유가 돕는 배필이 필요해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혼자 살아서는 맡겨진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창조의 원리가 바로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1. 창조원리로써의 갈등

 

인간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연대 책임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어떤 인간은 착하고 어떤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악하면 모든 인간은 다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만드셨지만 한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인류는 모두 죄인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 선하게 되는 것도 나 혼자만 악하게 사는 것도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입니까?

혼자서는 선하게도 악하게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하지 못하면 악하다는 것이므로 혼자인 것을 하나님은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인간의 고독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따라서 고독을 즐긴다면 그것은 악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해서 죄인인 우리들은 먼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해야하고 그 다음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새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웃들과 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갈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거룩한 갈등입니다.

 

우리는 지금 남북이 가로막혀 대화의 창구마저 막혀 있습니다.

왜 입니까?

북한이 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북한을 놓고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북한은 고립되어 스스로 자멸 할 텐데 왜 보고만 있지 못하냐하면 혼자 죽지 않고 다 같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핵폭탄 제조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연합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저렇게 되기 전에 미리 돕고 연합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좀 거추장스럽고 불편했어도 나눠 먹었어야 했고 나눠 갖었어야 했습니다.

꼭 핵을 만들고 나니깐 이러는 것은 벌써 명분을 상실한 추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사람이 함께하느라 그런 수고와 갈등을 격은 자들에게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연합 원리로써의 갈등

 

연합은 나를 잠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바로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 만든 원리와 습관과 버릇과 영역은 아주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의 집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 올 집이 없이 평생을 외지로 다녀야 한다면 얼마나 고달플 까요?

날마다 내가 잘 곳과 지낼 곳과 먹을 곳을 찾아 다녀야 한다면 얼마나 그 삶이 비참할까요?

 

모든 짐승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했습니다.

이 말은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쉴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일까요?

왜 예수님은 쉴 곳이 없어야 했을까요?

 

내가 쉬면 이웃이 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자면 이웃이 깨야하고 내가 깨어 있어야 이웃이 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 된 이 땅은 쉴 곳이 아니라 일할 곳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쉼터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연합은 일이며 노동이며 불편하며 수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연합은 쉼이 아니고 휴식이 아니고 엔조이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한 것 자체가 엔조이하라는 것이 아니고 연합하여 목적과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 많은 청년들이 갈등을 합니다.

내일 일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전화를 끊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일 일하러 가야하므로 이만 끊고 자자고하면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일이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이런 상대를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연합해서 뜻을 이루지 못할 상대 같으면 선택의 대상에서 당연히 제거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사람 보다 나은 것은 그것이 뭐가 좋은지는 도무지 외형상으로는 나타나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원리고

또한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먼저 연합을 시도하여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상실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나 한사람이라는 이기적인 인생의 목표를 버리고 과감하게 우리라는 두 사람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편하고 쉽고 홀가분한 나 하나의 울타리를 벗어나

연합의 고통과 불편과 다툼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찾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