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신앙과 생활

2015.10.25 08:44

나에게 교회란

조회 수 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에게 교회란?

시편 26편1∼12절

2012년 7월 29일 가까운 교회 주일 낮

 

여러분은 요즘 세상의 모든 교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지난주를 비롯하여 아주 자주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꼭 교회가 성도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재정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그런 것과 상관없이 교회라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의 입장에서

 

 

나에게 교회란?

당신에게 교회란?

 

 

일주일에 한번 나와 주는 곳입니까?

아니면 단 한번이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나와야 하는 곳입니까?

혹시 여러분이 교회 나오시는 이유가 목사랑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눈엔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하는 교회 같습니까?

 

어떤 사람의 눈엔 문서 선교에 아주 강한 교회라고 합니다.

크리스챤 타임즈와 주보가 우리 교회에서 나타나는 가장 외형적인 것이기에 그런 말이 붙어 있습니다.

 

또 교육에 신경을 쓰는 교회라고도 합니다.

평신도 성경대학도 그렇고 우리는 일정한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 보직을 임명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권사 임직도 고난도의 훈련을 마친 후 임직한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평신도 성경 대학 못 나온 사람은 아무 곳에도 배치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기본도 없는 사람을 어려운 공부를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부 목사가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목사는 뭐를 하던 달란트대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문제는 평신도가 무엇을 하는 교회냔 말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 / 헌금 하는 것 / 그리고 맡겨진 사소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

예를 들면 예배위원이라든지 식사봉사라든지 헌금 계수라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면서 때가 되면 하는 것이니깐요.

 

조금 선교에 힘을 쓰고 있고

조금 장학금에도 신경을 쓰긴 합니다.

그 외엔 그리고 보니 우리교회도 평신도가 하는 일이 없는 교회 같습니다.

 

 

교회와 고물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교회는 교회인데 고물상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고물상은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고물상이냐 하면 고물이 쌓여 있기 때문에 고물상인 것입니다.

버리는 것들을 주어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싸게 공급해 주는 만물상이 바로 고물상입니다.

 

그럼 고물상 같은 교회가 있다면 그 교인은 다시 말하면 고물들이란 말입니다.

고물들이 모이는 곳이 고물상이니깐 고물같은 교인들이 모이면 고물상 교회가 되는 것이죠.

 

 

여럿이 모여 있기는 한데 쓸모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와글거리며 웅성거리며 모여는 있는데 가치 있는 사람은 없고

왕년에만 잘나갔지만 지금은 할 일 없는 사람만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기 보다는 진짜 고물상입니다.

 

 

왜 교회가 고물상 같은 것일까요?

 

성경적 교회 관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교회는 안에서 밖으로 빛을 비추는 곳입니다.

하지만 요즘 교회는 세상의 것으로 교회를 치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교회를 빛내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투자와 교육이 이어질 때 생명이 있다.

 

 

교인들을 세상의 빛이 되게 하기 위해 훈련시키고 투자하고 비전을 둬야 하는데

성도들을 오직 교회 안에 가두어 교회용으로만 사용되게 훈련하므로써 세상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 할 수 없는 성도들만 가득하게 해서 교회가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되게끔 자처한 것입니다.

 

 

교회의 한 성도는 사회를 변화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한 성도는 사람들의 입에 희망이 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한 성도는 굶주린 자들에게 떡과 음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을 성도들이 바로 교회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100독하면 뭐합니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면 뭐합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희망도 소망도 밥도 안 되는 아무 작에도 쓸모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병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평신도 스스로가 교회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서 가르치고 훈련하고 나누고 그래서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나에게 교회란 이란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려고 교회 나오는 거 아닙니다.

예배는 집에서도 드릴 수 있어요. 헌금도 무통장으로 온라인 입금 할 수 있어요. 뭐 카메라만 설치하면 외국 어디서도 예배 실황과 함께 얼마든지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교회의 의미는 그런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내용은 다윗이 늘 맘에 담고 있었던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함께 모시고 싶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기 위해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우선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다윗은 성전을 주의 제단이라고 하였습니다(6절). (회개와 용서)

둘째, 다윗은 성전을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라고 했습니다(8절). (교제와 나눔)

셋째, 다윗은 성전을 주의 영광의 장막이라고 했습니다(8절). (승리의 영광)

 

 

이렇듯 구약의 성전은 내가 달려가야 할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성전은 주님이 와 계신 바로 그곳이 성전입니다.

때문에 내 안에 주님이 계시면 나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움직이는 성전이므로 당연히 성전으로써의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나만히 할 수 있는 그 역할을 깨닫게 될 때 나에게 교회란? 질문의 답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얼마 전에 사위를 본 박종민 집사님은 기술도 좋고 성품도 좋아 힘써야 하는 교회의 각종 일을 다 도맡아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기뻐하고 또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종민 집사님 입장에서 그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봉사로는 질이 만족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집사님에게 있어서 그 기술을 주신 하나님은 오직 교회를 위한 교회용이기 보다는 아직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기술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동네가 문제만 있으면 박집사님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봉사도 좋지만 더 나아가 그 기술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까지 나아가야 박집사님의 개인적 입장에서 교회에서 배우고 익히고 터득한 삶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교회가 주는 것입니다.

그 모티브가 교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종교적 행위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 읽고 찬송하고 기도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 일만 잘한다고 칭찬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빨리 교회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교회의 담을 넘어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성도의 사명입니다.

 

그 일을 위해 뭔가 한 가지씩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주신 그 달란트를 가지고 세상으로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