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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5.10.25 08:42

나도 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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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한복음 4:1~ 26

제목: 나도 복음을 전 할 수 있다.

 

 

 

1세기 초 이스라엘은 남쪽 유대와 북쪽의 갈릴리로 이어져 있는데 그 중간에 사마리아라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이 사마리아는 구약 시대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지만 결국 앗수르에게 망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 포로가 된 바로 그 지역을 말합니다. 당시 앗수르는 강대국이었으므로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 포로 중 일부를 다른 곳으로 일부 이주 시키고 다른 점령 국가 포로들도 일부 사마리아로 이주 시켜 함께 살게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모든 포로들이 살 수 있도록 하되 여러 부족을 섞어 살도록 하는 것이 앗수르의 포로 정책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워낙 신앙이 좋고 선민사상(하나님이 선택하여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상)으로 뭉쳐져 있으므로 타 민족과는 잘 섞이지 않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에서 해방이 되어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되었지만 그 가운데 소수의 포로들이 이미 그 지역에서 함께 거주한 타민족 사람과 결혼을 했거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져버리고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자들은 귀환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그냥 정착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거기서 나온 자녀들 즉 혼혈인들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사마리아 인들입니다. 물론 이들 역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임은 분명하지만 순수하지 못한 이스라엘 혈통이므로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배신자 또는 변절자, 죄인의 상징으로 분류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북쪽에 거주하는 갈리리 지방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려면 이 사마리아를 거쳐야 빠른 길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사마리아를 피해 요단 동편으로 우회하여 가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사마리아 인들과는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이러한 몇 백 년의 관례를 깨고 이 금기지역을 찾으셨습니다.

이것은 전도는 버려진 자들을 위함이란 것을 친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 집 안에 있는 아들이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가 죽도록 고생하는 자식이 더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손길은 집에 있는 자가 아닌 나간 자에게 먼저 내미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부여 받은 전도의 원리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행실이 불량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였고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서로에겐 큰 장애가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던 세계는 판이하게 달라서 서로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다른 의미로 이해하기 까지 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생수"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 는 서로 양극을 이룹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곧 유대남자인 예수님께 흥미를 느끼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리가 좁혀지게 됩니다. 더욱이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속 마음까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 여인은 즉각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을 하게 됩니다.(4:19) 자신을 너무 잘 알되 그 마음까지 안다는 것은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이 여인의 삶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는 나오지 못할 정도 부끄러운 삶을 사는 여인으로써 다들 낮잠을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간신히 나와 물동이를 채워 사는 그럼 비참한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삶을 책망하고 나무라시기 전에 너의 목마름을 내가 해결해 주시겠다면서 문제의 열쇄를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마리아 여인은 날마다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자였지만 늘 목이 말랐습니다. 그것을 예수께서 아시고 찾아 가신 것이었습니다.

 

목마른 여인은 즉각 예수의 구원 초청에 답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이 여인은 모두 잠든 마을로 달려 나가며 메시야가 이것에 왔다면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 했습니다. 좀 전의 모습이 180도 변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번 마시기만 하면 다시는 갈하지 않게 하는 예수의 생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그녀의 믿음보다 더 자랐다고 (42절) 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내 믿음이 온전치 못하고 연약해도 예수를 증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전도자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도자의 믿음에 종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탄생했으며 이 복음이 장벽을 넘어서 이방인 에게 전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창 12:3)

아브라함 안에서 땅의 모든 종족들이 복을 받게 되었었습니다.(이사야 2:2)

산들 중에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모든 나라들이 올라갈 것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룻기와 요나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다른 민족에게도 임한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두움을 비춰주는 촛불이든, 등불이든, 형광들이든 맡은바 받은 은혜대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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