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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5.10.20 17:58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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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공동체

행4:32-37

 

2012년 11월 18일 골드코스트 가까운 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오늘날 두 극단의 정치형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보다 사회집단이나 국가가 더 중요함으로 개인은 언제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와 국가나 사회의 통제나 간섭을 극소화 시켜서 개인의 이익과 자유를 추구하자는 개인주의입니다.

전체주의 때문에 수 많은 인권이 유린을 당해야 하고 개인의 생명 가치가 관권력 앞에서 말살되어져 버리는 비극적인 정치 형태를 우리는 오늘의 현실속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경제의 원칙하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힘에 의해서, 자기 노력에 의해서 많은 경제를 소유하지만 이것이 극단화 되어서 이제는 속이고, 남을 이용하고, 잘못된 방법까지 동원해서 남을 죽이고서라도 내가 살아야겠다고 하는 비극적인 이기주의가 우리사회 가운데 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행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2장과 4장에 성도의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행2장에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42-47절)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매일 교제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뿐 아니라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제했습니다.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빈부귀천이 모두 무너져 버리고 교통하는 관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천한 사람도, 귀한 사람도 없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공존하며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역사로 말미암아 소유욕들이 모두 무너져 버리고 이웃들의 필요를 위해서 자신을 나누어주는 새로운 소유의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행2장에 나타나는 공동체,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결론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는 공동체는 성령충만의 결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행4장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하나됨에 있습니다.(32a)

32절 상반절에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생각도 다양하고 개성도 다양합니다.

이 통일이라는 말이 상당히 좋은 말이지만 잘못하면 획일화를 위해서 개인의 생각과 개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전체주의 사상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위험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어떻게 한 마음과 한 뜻이 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권력이나 정치형태로가 아닌 자발적으로 그들 모두가 한 생각으로 통일될 수 있었습니까?(엡4:3-6)

하나님 안에서 동일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한성령을 마시게 되고, 한 소망을 갖게 되고, 한 주님을 모시고 한믿음, 동일한 세례, 한 하나님으로 살게된다는 교회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부르심, 동일한 복음이 있을 때 우리 가운데 한 생각 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 통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복음이 채워져서 성령이 충만하게 될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될 때 가능합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왕이되시고 주인이 되실 때 가능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분열과 다툼이 끊이지 아니하고 교회안에 각종 파벌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견, 나의 주장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 거기에는 파벌과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복음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사람들을 채우고 복음이 무르익어질 때 그리스도가 개인 안의 머리가 되시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심으로 복종하면서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게 될 때 거기에 진정한 통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7장에서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0-23)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너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 물질을 나눔에 있습니다.(32b)

32절 하반절에서 소유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말합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소득에 차이가 생깁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소유에 많고 적음에 따라서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에 계층이 생겨서 각종 사회문제로 비화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인 정치제도나 법으로는 이 소유욕의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소유욕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19:16-24절에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 주님을 찾아왔던 한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네가 온전해지려면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나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소유에 연연해 하지 말고 나를 따르는 것을 너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쓸쓸한 표정으로 돈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기에 떠나가 버린 어리석은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눅12:13-21절에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소출이 점점 많아지게 되므로 창고 지을 것을 걱정하고 있는 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눅14:33절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눅16:33절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초대교회의 모습 속에서 복음은, 살아있는 복음은 물질을 초월하고 소유욕을 깨뜨리고 움켜쥐거나 강탈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서, 이웃들의 필요를 위해서 물질을 사용하는 진정한 복음이 꽃피는 모습을 보았기에 자신있게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너희가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나의 주인을 설정해야 한다』고 하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외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많은 나그네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또 원주민 교우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유태인들은 이러한 동족을 구제할 때는 '쿠파'라는 말을 사용했고, 외국사람들을 구제할 때는 「탐후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일찍이 빈민들을 구제하는 좋은 전승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성령으로 채워진 성도들이 소유한 재물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고 가난한 형제들과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그들의 물질을 사용해 달라고 그들의 재산을 내오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적어도 물질이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7-39)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나누는데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십시다.(행20:35,히13:16)

3. 복음을 나눔에 있습니다.(33)

초대교회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복음을 서로 나누는 모습을 발견합니다.(33절)

사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의 복음을 이웃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메세지를 통해서 그들의 간증과 증거를 통해서 은혜를,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영혼이 아직도 죄 안에 매여있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겔3:1)

(2) 전도대상자를 찾아가야 합니다.(요1:42)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후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3)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롬1:3-4)

사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천사들은 구주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눅2:10-11)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을 증거했습니다.(행28:23,31)

살아있는 복음, 살아있는 물질은 언제나 필요한 영혼을 찾아 갑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어줍니다.

그들의 생명을 세워주고 그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요, 직책입니다.(딤후4:5)

오늘 교회 안에 양극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잘 나누지만 복음은 전혀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간증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가르치는 것, 복음을 나누는 것은 많이 하지만 물질을 나누는 일에 있어서는 전혀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더 자라야만 합니다.

성숙한 복음은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교훈만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나라의 메시지만 들려주고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르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를 주셨고 그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나눌 뿐만 아니라 내 생명처럼 귀하게 생각했던 물질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개성, 나의 생각까지도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누가는 본문36-37절에서 한 사람의 멋진 모델을 제시함으로 성도의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복음이 그 안에 채워졌을 때 그가 가졌던 모든 재산을, 그것들을 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어놓았습니다.

바나바는 물질로만 이웃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영혼을 세워주며 능력있는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며 생명들을 섬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바나바는 평신도로, 목회자로,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한자였습니다.

우리도 바나바처럼 물질과 복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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