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담보한 충성

by 관리자 posted Feb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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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담보한 충성

요한 계시록 2장 10절

 

 

사람들은 참으로 죽겠다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배고파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

지겨워 죽겠다

보기 싫어 죽겠다.

 

어찌 보면 이 말은 살아서는 최선을 다할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맘 놓고 먹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서 맘 것 바라 볼 수 없다

죽도록 지겹고 죽도록 보기 싫은 것도

뭔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우리에게 그 죽음을 요구 한다면 어떨까요?

 

죽을 때까지 죽도록 일해라

죽을 때까지 죽도록 먹어라

죽을 때까지 죽도록 바라봐라

죽을 때까지 죽도록 사랑해 봐라

 

아마 그런다면 그것을 감당 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충성을 하되 목숨을 담보하라고 요구 하십니다.

네가 죽기까지 네 목숨을 내어 놓을 때까지 한번 충성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라

영적으로 전쟁의 상황이 벌어진다는 경고 이후 나온 말씀입니다.

 

말세에 마귀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을 시험하고 환란으로 몰아넣고

아주 환란을 극심하게 몰아 때린 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언을 하면서 그것을 이겨내라며 나온 말씀이 “너는 오직 마귀의 간악한 계략에 개의치 말고 죽도록 충성만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도록 해서 이기면 살고 못 이기면 그냥 죽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과 부모로써의 양육과 가정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직업과 사회 이바지라는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복음 전파와 말씀 증거, 더불어 신앙과 믿음의 수호라는 영적 책임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이 사명은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는 책임감으로는 어림없습니다.

 

자기 몸 하나 지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가정적 사회적 책임에 교회적 책임까지 다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죽도록 말입니다.

 

죽음을 담보로 한 충성은 뭐가 다를까요?

 

살아 있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도 하지만 방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살아있다는 것은 목적과 목표를 방해하는 세상의 유혹이나 정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갖어야 할 것이 One way ticket입니다.

 

1. One way ticket

 

내가 나아가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돌아갈 길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킨 그 사역의 현장에서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2. 집중

 

전쟁에서 군인이 살려면 다른 일은 신경 써선 안 됩니다.

오직 집중해서 흔들림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이것저것 그런 자세는 절대 안 됩니다.

 

3. 즐거운 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노력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즐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고통스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죽도록 충성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1. 죽음 대신 삶

 

죽고자 하는 사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놀고자 하는 자는 평생 고단하고

평생 고단하고자 하는 자는 평생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 하지 못한 자는 그때부터 다른 고난의 시작임을 명심하야 합니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자에게 가정을 맡기면 그 가정은 망합니다.

자기 가정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사회를 맡길 리 없습니다.

이 사회에 살면서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지 않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자피 우리는 모두는 속절없이 죽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기에 곧 죽습니다.

 

쓸모없이 살다가 죽어 거 잘 죽었다라는 소리 듣지 말고

가치 있게 살다가 더 살아서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며 아쉬운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냥 그 충성을 헛되게 하실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 생명의 면류관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도 잘 모르지만

암튼 엄청 좋은 것임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대충대충 산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 뭐하겠습니까?

 

요즘 개콘에 “놀고있네”라는 코너가 나옵니다.

많은 이들이 웃고 즐기면서 “진짜 놀고있네”라고 비웃고 콧방귀 뀝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어쩜 나랑 저렇게 닮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남들은 죽어라 노력하며 이루어 놓은 것을 쉽게 얻을 것으로 생각하고 인생 한방을 외치는 철부지들을 보며 저는 참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건 나의 모습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매사에 충성스런 모습은 어디에서 곤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냥 결과만을 바라보는 바보들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죽도록 충성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