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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9.01.16 11:29

신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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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메시지

 

바벨탑 쌓기를 멈추자 / 창세기 11장 1-8

 

우리는 바벨탑하면 지금의 이라크인 시날 평야에서 사람들이 하늘 끝까지 닿을 수 있도록 탑을 쌓고 모든 사람들이 멀리 흩어지는 것을 막고 한곳에 모여 살자고 결의를 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에덴에서 타락 이후 인간들은 분열과 부조화를 경험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들의 이런 단합된 행동들은 그리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어찌 보면 모처럼 단합하는 것이 기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바벨 탑 건설 계획에는 하나님이 동의할 수 없는 인간들의 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간파하신 하나님은 이 인간들의 계획을 즉시 물거품이 되게 하셨고 이런 연합운동이 근본적으로 성사되지 못하도록 인간의 언어를 갈라놓으셨습니다. 이는 언어대로 사람을 헤쳐 모일 수 있도록 하신 조치이며 이것은 노아 홍수 이후 또 다른 유형의 인류 비극으로 기록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과 사람이 말은 하는데 통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비극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의 영어와, 독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 얼마나 살기가 어렵고 힘듭니까? 참고로 현재 전 세계의 언어는 약 3,000개이고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약 1,700여 개국 언어입니다.

 

하나의 통일된 언어는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 다 줍니다. 바로 소통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이어지고 교육, 문화, 경제에 아주 중요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게다가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엄청난 파워를 의미합니다. 제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가보니 저는 완전히 바보였습니다. 제 힘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같으면 사상도 같을 수 있습니다. 언어가 같으면 생각도 함께 맞출 수가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해서 그렇게 일본말을 가르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알렉산더가 식민지에 희랍어를 보급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언어의 통일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날 평야에 모인 사람들은 이 통일된 언어의 축복을 순식간에 빼앗겨 버립니다. 바로 잘못된 계획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국가라는 경계의 장벽 속에 갇히게 되었고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와 피지배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간의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평화를 위한 소통을 위해서도 갖가지 어려운 노력을 해야만 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불편함과 장애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바벨탑 건설은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흩어짐을 막고 다 같이 뭉쳐서 살자.”

 

이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온 지면 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지만 아무리 뭉쳐 살려 해도 비좁으면 결국은 살 수 있을 정도로 흩어져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을 만한 사유는 아닙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세 가지였습니다.

 

1. 하나님을 향한 대응

 

사람들은 직접 경험을 하지 못했지만 노아의 홍수를 전해 들었고 만일 또 다시 홍수가 밀려 온다면 자신들의 힘으로는 막지 못한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시는 홍수로 이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사람들을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홍수를 피할 수 있는 건물이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항하여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전능함을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인간은 약하고 무능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2. 통제를 위한 국경

 

하나님은 사람들의 왕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신 분인지 기억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하기 원하였다면 바벨탑 같은 높은 건물은 짓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국민들 통제 방법은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한 통제능력이 없습니다. 현대국가들도 마찬가지죠. 통제선 바로 국경이 존재해야 법으로 통제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통제 범위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하나님도 만들지 않는 국경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자신들의 힘으로 통제하려는 인간들의 악의를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국경을 긋지 않으셨습니다. 열린 세상에서 어디서든 마음것 살게 하신 것입니다.

 

3. 인간 통치자

 

바벨탑을 완성짓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면 그들은 누가 통치했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인간들 중 몇몇 사람들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을 이들의 리더십은 결국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가두고, 여러 가지 다양한 법들을 제정하여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고 협력해야 하는 하나님 창조의 법과는 달리 욕망과 정욕에 배고픈 인간들의 야욕에 넘어간 나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대가를 처절하게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통치를 사람들은 단호히 거부 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외의 그 어떤 통치세력도 거부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들은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하는 교만한 인간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혼잡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흩어지는 그들의 손엔 불순종이라는 보따리들을 하나씩들고 온 세상으로 퍼졌으니 얼마 전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리신 후 다시 온 세상이 악으로 가득차게 되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이 되었습니다.

어자피 바벨탑 건설은 ​불가능한 시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의 교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그럼 오늘날은 바벨탑이 없을까요?

 

지금부터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한결 같은 바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도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을 우리, 나로 가지려 할 때 그것은 벌써 바벨탑을 기획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학문의 바벨탑

금전의 바벨탑

권력의 바벨탑

성욕의 바벨탑

폭력의 바벨탑

지배의 바벨탑

지금도 도처에서 이 베벨탑 건설에 수 많은 사람들이 혈안 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일치와 연합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일치와 연합에 앞서 우리가 신앙적으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 하나 됨과 연합의 시도는 그 목적까지도 선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 남선교회에 회원이 30명인데 모처럼 산에 기도하러 가자 하면 5-6명은 모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신탕 파티하자 하면 최소한 20명은 모인다는 것입니다. 보신탕이 남선교회회원을 하나로 만드는데는 최고라는 것입니다.

 

여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의탁 노인 봉사하러 가자하면 하나가 안 된답니다. 그런데 파주 찜질방 가자하면 전 회원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전도회 발전의 키를 찜질방이 가지고 있다는 이 웃지 못할 일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 하나 됨의 목적이 건전해야 합니다.

 

모여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방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불신앙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광받는 일에 하나 되지 말고 십자가 지는 일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데 하나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되어야 합니다. 나의 유익을 추구하는데 하나되지 말고 주님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추구하 는데 하나되어야 합니다. 비난하는 일에 하나되지 말고 칭찬하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죄짓는 일에 하나되지 말고 덕을 세우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벨탑을 쌓은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함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은 인간중심. 인간위주의 신학사상이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되게 하는 것인데 인간이 주인 되면 그 자리가 바로 시날평지에 솟은 바벨탑의 현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하나님의 뜻이 펼쳐져야 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그것을 정당하다고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주님만 사시면 됩니다.

나는 욕먹어도 좋습니다. 주님만 높임을 받으시면 됩니다.

나의 자존심을 아무리 무너져도 좋습니다. 주님만 욕먹지 않으시면 됩니다.

우리가 쌓은 인간중심,인본주의, 인위적 신앙의 바벨탑이 있다면 이 시간 다 허물어 버려야 합니다.

 

시날 평야는 인간의 교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가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내 마음속의 바벨탑을 허물어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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