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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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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강해 7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1-12

 

 

사람에게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더 있답니다.

바로 마음의 눈이랍니다. 일명 마음의 창이죠.

 

이 마음은 실제 눈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합니다.

여러분 슬픈 일을 겪었을 때 눈물은 눈에서 흐르지만 고통은 마음이 느낍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눈이 아픈가요? 아닙니다. 바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무쇠보다 강하고 어떤 때는 종이보다 약한 이 마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가장 강하게도 만들고 동시에 가장 약하게도 만드는 곳입니다.

더불어 마음은 마치 흰 도화지 같아서 처음은 아주 맑고 깨끗하지만 무엇이 그려지느냐에 따라 그대로 나타나는 다소 의존적인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놓고 두 세력이 영역 다툼을 합니다.

 

감성과 영성입니다.

 

감성은 감정의 지배자입니다.

환경과 대상과 경험에 기인하여 상대에게 나타내는 깊은 감정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감정은 컨트롤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감성에 지배를 받으면

강하게는 폭력, 파괴, 살인, 자살 등 대형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하고

약하게는 우울증, 공포증, 의기소침, 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영성은 다릅니다.

 

영성은 마음을 양육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성숙시켜 큰일에도 쉽게 적응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렇게 단련되고 훈련된 마음은 의외로 감정을 컨트롤하고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이것이 영성이 마음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닮은 영적 형상으로써 청결 중에 청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일화입니다. 그분이 한 때 관상쟁이가 되기를 희망한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도 출세 길은 과거에 급제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급제를 결정하던 당시에 그에게 합격의 행운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백범의 아버지가 농담 삼아 “관생쟁이가 되면 생계는 걱정이 없겠다”고 한말에 솔깃해서 그는 관상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에 따라서 먼저 자기 관상을 보니 천하에 불길하고 흉한 상이었습니다. 김이 샜습니다. 내 관상이 이 지경인데 남의 관상을 보아서 무엇하리요.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마지막 한 줄이 결정적으로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관상은 신상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만 못하다”

 

얼굴이 잘생긴 관상은 몸이 튼튼한 신상만 못하고 몸이 튼튼한 관상은 마음이 순전한 심상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어떻게 좋은 심상을 가질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 책을 계속 보다 ‘심상은 마음먹은 목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내 삶의 목표는 불행한 내 조국과 민족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김구 선생이 애국의 길에 들어서는 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복ㅇㄹ 받으려면 먼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겨주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는 이미 청결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는 청결을 또 강조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의롭다 칭함을 얻었어도 우리의 육신이 죽기 전 까지는 끊임없이 죄를 범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적 궁핍을 느끼되 스스로 채울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팔복의 이런 축복은 하나로 연결되어 진화되어 갑니다. 심령의 가난함으로 천국을 얻고, 그 다음 애통함으로 성령의 위로를 받고 자신을 팔아넘기는 온유가 하나님의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땅을 얻게 되고, 그런 의를 간절하고 담대히 구하고 원한다면 부요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이 남을 긍휼히 여기는 어진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만큼 그 청결함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1.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청결은 내 마음이 영성의 지배를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의 눈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눈을 갖으면 사람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눈은 사람의 속을 보는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보이고 하나님의 입장이 보이는 것입니다.

2. 쉬지 않고 청결케 하는 것입니다.

 

몸에 떼를 민다고 다시는 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밀고 밀어도 자꾸 생기듯이 우리 몸에 있는 눈도 하루에 한 2만 5천 번 정도 깜빡거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샘에서 나온 깨끗한 액으로 안구를 계속해서 씻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먼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밝게 만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글도 보는 것입니다.

청결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 눈을 이런 식으로 닦는 것처럼 깨끗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죄는 아주 작은 의심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것이 점점 커가면서 마음을 더럽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을 미워해 보십시오. 미움, 증오, 비난, 경멸 등이 자라면서 마음이 침침해지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점점 흐릿하게 보입니다. 증오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해 보십시오. 보이는 모습과 시각이 달라집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계속 미움의 불길이 타오르면 그 마음의 눈은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청결을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3. 나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깨끗함을 넘어 한쪽으로 집중해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여기저기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나누어지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 가운데서도 여러 신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신이 아닌 오직 유일한 신으로 받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일편단심은 여러 가운데 정절을 지키는 것이고 유일신은 유일무이하게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집중이 되지 못합니까?

 

우리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세상의 염려가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게 집중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것 때문에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우리 마음에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하나님에게 더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마음들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우리 마음을 집중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으로 팔려가지 않으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 가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보디발의 집에서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애굽의 총리로서 애굽의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또 요셉에 감옥에 갇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을 만나지 않았고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모든 삶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어떻게 함께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요셉을 인도하셨습니까? 그것은 고난이라는 리무진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니까 무조건 잘 되는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고난입니다.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제들에게 쫓겨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고난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나눔을 하실 때 특별히 고난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 것을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전 생애를 두고 어떻게 하나님께 함께하셨는가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날마다 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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