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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성공시간

사도신경 강해
2015.10.25 17:47

7강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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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해 7

본문 : 베드로 전서 4장 1-6

 

오늘은 사도신경 해설-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에 대하여 배우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두 가지 시각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고난의 살펴봅시다(사53:1-4절)

 

빌2:6-7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낮추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롬8:3에 보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영광 잃은 사람, 곧 죄는 없으되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왕이면 기가 막힌 미남으로 오시지 왜 그리 추하게 오셨을까요?

이왕이면 돈 많은 부자로 오시지 왜 그리 가난하게 오셨을까요?

돈과 외모는 죄를 짓게 하여도 고난은 그것의 죄를 씻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입장에선 바로 고난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고난을 다 받으시고 체험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53:2의 말씀처럼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했으니 요즘같이 비주얼로 사람 따지는 세상에서는 축에도 못 들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52:14에 보니 ‘그 얼굴이 모양 없이 상했으므로 사람들이 보고 놀랐다’고 했고

요8:57에는 불과 30세의 청년 예수를 50세도 못되었다며 나이 든 인생으로 보았으니

그가 얼마나 볼품이 없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목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직업적으로도 멸시를 받았습니다.

공생활에 나타났지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업신여김을 당했고, 여러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소외되고 천한 사람들과 교제를 했더니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사53:4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죄 없이 나셨고 죄 없이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큰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형벌을 받는 줄 오해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②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살펴봅시다(사53:4-6,8,11-12)

 

예수님의 고난 중에 가장 심한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한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듭 죄를 담당하셨다고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우리의 대신이라는 근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란 말씀은 우리 대신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당하여 지옥의 고통을 당하신 것을 말씀하는 것인데 육체적 고통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영혼의 고통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고 신음하신 것도 단순히 육신의 출혈로 말미암아 오는 생리적인 갈증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목마르신 것 곧 우리 대신 지옥에서 당하는 영원히 목마르는 고통을 느끼시고 당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을 직접 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영육이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이렇게 예수님을 죽게 했을까요?

그 답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에 나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빌라도]는 당시 로마 제국의 총독으로 십자가 형벌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자였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가장 추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형틀로 종이나 식민지 백성들만 이런 극형에 처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식민지 백성이 되어 그 값을 담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저지른 세상의 죄 값을 다 치르려면

죄의 상징인 인간의 대표인 빌라도가 죄 없는 구속의 상징인 예수를 마땅히 처형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의 공식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죄 없는 예수의 몸에 전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거절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그럼 왜 구속의 대가로 단번에 죽이지 않고 수많은 고통을 당하게 하셨을까요?

 

죄는 결과가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죄를 짓기 위해 계획을 하고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수도 없는 불법을 반복하면서 끝내 죄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더럽고 무섭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과정을 알기에 세상의 법정에서도 고의 적이냐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냐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죄는 거의가 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이고 계획적입니다.

그 과정도 다 용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받으셔야하는 고난의 여정입니다. 끈질기도록 이어지는 인간의 죄는 예수의 숨통을 단번에 끊지 못하게 하고 마지막 운명하는 그 순간까지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남김없이 쏟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이 숨 막히게 예수께서 연이어 고난을 당하게 했던 이유입니다.

 

이제야 아시겠습니까?

우린 오늘 회개하고 잠시 후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럼 예수께서 또 죽으셔야하나요?

아닙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맛보고 당하셨던 고난과 죽으심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고 우린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힘이 드나요?

아니면 대책이라도 따로 세워두셨나요?

아뇨, 이간의 대책은 이런 하나님의 구속원리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고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없으니 마음 것 즐기라고 캠페인을 벌입니다.

 

여러분 그러지 말고 예수의 구속의 고난을 믿으세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의 그 아픈 고난과 죽음이 나 때문이라고 고백하십시오.

사실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죄 성은 나보다 누가 더 잘 알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썬다싱의 이야기입니다.

 

썬다싱 일행이 눈덮힌 산을 넘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옆에 가던 사람에게 업는데 부축하여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여보 그 사람 업고 가다가 우리가 죽겠오’ 하고 옆 사람은 퉁명스럽게 내뱉고 그냥 올라가 버렸습니다. 썬다싱은 힘에 겨웠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들쳐 업었습니다. 한발 두발 눈길을 딪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던지 곧 전신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신이 열에 젖었습니다. 이 열로 인하여 등 위에 있던 사람이 따뜻하게 녹아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이들은 힘들지만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썬다싱은 깜짝 놀랐습니다. 앞서 가던 사람이 꽁꽁 얼어서 죽어있었습니다. 고난을 함께한 자들은 살았고 혼자의 힘으로 살려한 자는 죽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거져 받은 것입니다.

먼저 구원받은 우리가 전도하지 않고 그대로 한 평생을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세상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생명을 버리신 주님을 본 받고 따라 가는 자되어 우리도 진리의 증인이 됩시다.

 

이 사랑을 깨달은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일4:10)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고난에 대하여 일체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모진 매를 맞아도, 수염을 뽑혀도, 침 뱉음을 당해도, 가시관을 씌워도, 못을 박아도, 고난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말없이 끌려가서 우리 위해 순종하사 죽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나에게 고난을 받으사입니다.

내가 예수를 저렇게 고난 가운데 죽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과 강하게 연결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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