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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2015.10.25 08:35

민통선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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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교회의 눈물

 

1998년 당시 저는 작가 신분으로 소설 집필을 위해 애기봉 휴전선 최전방 민통선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본 민통선 마을은 다른 휴전선 지역과 달리 서부전선의 지리적 특성인 평야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시골마을처럼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나 남북분단체제의 선전방송으로 마을은 늘 긴장감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체제선전방송의 소음으로 새벽잠을 설쳐도 이곳이 삶의 종착점이라고 여기던 마을주민들은 분단지역의 불편함을 운명으로 감내하며 잡초 같은 삶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이런 민통선마을의 모습을 보며 빈민목회의 비전을 받았고, 칼빈신학교에 편입을 하여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김포지역에 아동공부방이 하나도 없을 무렵 마을회관을 빌려 교회간판을 달고 김포 최초로 마을공부방을 시작하며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민통선도서관도 만들고 무료연탄은행을 만들어 마을주민들에게 봉사하고, PC방을 설치해 해병대 군인들의 주일 쉼터를 만드는 등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참으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통선마을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04년 6월 초순 무렵 남북 장성급 당국자들이 군사회담을 열고 애기봉 일대를 비롯해 전국 민통선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체제선전방송을 중단하고, 상대를 향한 체제선전 및 비방 중상 선동을 위한 확성기, 입간판, 전단, 선전종교탑 등을 제거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귀를 먹먹하고 만들고 새벽잠을 설치게 하던 체제선전 방송을 중단한다는 소식으로, 민통선마을 주민들은 얼싸안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후 긴장으로 팽팽하던 우리 마을은 평화가 찾아들었고, 교회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지척 북녘 땅도 고요하게만 보였습니다. 이후 약 6년 동안 체제선전방송 없는 고요함 속에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2010년 12월 21일 밤, 어두운 밤하늘을 앙칼지게 찢는 비상대피 사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 지하 방공호로 급히 몸을 숨겼습니다. 전쟁 공습 대피 사이렌이었습니다. 용강리마을과 바로 이웃 마을이며 애기봉 밑에 위치한 조강리마을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전쟁의 공포로 밤을 하얗게 새워야 했습니다. 날이 밝자 마을에는 여러 대의 탱크가 진주해 있었고, 그 탱크들은 마을 구석구석에서 포신을 북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전투기도 날고 있었습니다.

 

전투기와 탱크가 배치되고 민통선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해야 했던 이유는 애기봉에 설치된 성탄트리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은 애기봉의 등탑 점등을 2004년 홍보전 중단 합의를 남측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애기봉에 성탄트리를 밝히면 인근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으로 북한이 공격발표를 하자, 민통선 접경지역에 찾는 관광객들이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전쟁위험지역으로 낙인찍혀 부동산가격이 급락하는 등 지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민들에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올해 또 애기봉에 등탑을 설치하겠다며 점등할 단체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방부에 대북심리전술부서가 신설된 후 종교단체를 끌어들여 대북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 우리 교회는 국방부에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성스러운 트리를 대북심리전에 이용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지역주민 불안과 지역경제 파산, 교회끼리 싸움을 붙이고 이간질 시키는 애기봉 트리는 절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항의했습니다. 지금 김포 지역 주민들도 시의회를 비롯하여 지역시민단체, 정당들까지 나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필자가 시무하는 민통선평화교회도 전쟁위험 지역으로 낙인찍혀 선교 후원이 끊기고, 15년 기도 끝에 성전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기회도 위험지역에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휴전선 15년 목회가 절박해졌습니다.

 

민통선평화교회는 지역에서 주민들과 아픔을 같이하며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한번 비추는 애기봉의 성탄트리가 복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휴전선 앞 교회에서 드리는 새벽기도, 자꾸만 눈물이 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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