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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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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회개할 때다

 

정성구 목사

(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다시 종교개혁주간을 맞는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지 494년! 아직도 교회의 개혁은 끝나지 않았고, 그 때의 문제는 오늘의 것으로 남아 있다. 루터나 칼빈이 살던 시대의 사람이나 오늘날의 사람들이나 모두가 부패하고 죄인이라는 것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교회의 개혁은 16세기의 과제인 동시에 오늘의 과제이기도 하다.

 

최근까지 한국교회에서 개혁을 논하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개혁된 것이 없을 뿐더러, 정말 교회 개혁을 구체적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교회의 갱신이니 교회의 개혁이란 말이 하도 많이 쏟아져 나왔기에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다 떨어진 셈이다. 누가 개혁이란 말을 써도 그저 그러려니 할 뿐 자신의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원론적으로 다 동의하면서도 모두의 문제로 돌려버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부르짖는 개혁이란 대개 헛구호에 그치고 만 셈이다.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종교개혁의 정신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 자신의 사상과 삶이 비성경적이었음을 고백하거나 통회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인 ‘오직 믿음으로’를 오용한다. 가장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것도 ‘믿음’이란 용광로에 넣어서 정당화하고 있다. 가장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것도 믿음이란 말로 감싸버린다. 그래서 믿음으로 했다느니 또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오용해서, 가장 인본주의적인 것도 믿음이란 말속에 용해시켜 버린다.

 

이제 한국교회의 개혁은 그 구호에 비해서 현실을 전혀 개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다시 개혁을 이야기 하자.

 

교회의 개혁은 정치적 의미가 아니다. 구태의연한 낡은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의 갱신도 아니다.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학들이 개혁이란 말을 썼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개혁하는 것”(Reformed according to the Word of God)을 의미한다. 교회든지 개인의 신앙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고 바로 잡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적용할 때도 주관적 자기중심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그 성경의 해석원리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따른 해석이어야 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되, 그것은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것을 명백히 깨달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교회의 개혁이란 말은 교회가 부패했다느니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느니를 말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가 개혁을 해야 하고 장로가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대로의 개혁은 바로 회개이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요, 통회의 종교이다. 회개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회개를 외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온 인본주의사상에 감염되어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해서 이 땅에서 행복과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이런 시각에서는 회개가 필요 없고 다만 이 세상에서 물질의 축복과 건강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즐기는 기독교로 만들어 버렸다. 이기주의적 쾌락주의 종교에는 개혁이란 것이 필요 없게 된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지금 이 갈림길에 있는지도 모른다. 개혁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개혁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전혀 개혁되지 않는 사람들, 또한 언제나 오늘의 상황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의 개혁은 처벌할 수 있으나 신앙의 개혁은 처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종교개혁시대에 루터 칼빈 낙스 등은 개혁을 하나의 운동으로 가시화했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개혁을 시도한다면 개혁의 견인차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도도한 흐름으로 응집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을 지는 기독교인이 될 때 비로소 빛과 소금의 노릇을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하고 힘들어도 말씀대로의 개혁은 시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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